학술논문
1906년 천도교와 일진회의 분리 과정 재고찰
이용수 37
- 영문명
- A Study on the Process of Separation between Chundogyo and Ilchinhoe in 1906
- 발행기관
-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 저자명
- 김종준(JongJun Kim)
- 간행물 정보
- 『역사문화연구』제92집, 135~164쪽, 전체 30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역사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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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한국근대사에서 1906년 9월 천도교가 일진회원들을 출교시킨 조치, 즉 천도교와 일진회의 분리 사건은 일진회의 친일 행각과 천도교의 결백함을 보여주는 사례 정도로 알려져 왔다. 그러한 인식 속에 전제되어 있는 명제는, 일진회는 일관되게 친일매국단체였다는 것과 천도교는 근대화된 민족종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 일진회가 벌인 민권운동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이루어져 온 만큼, 천도교와 일진회의 분리 사건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본래 천도교와 일진회 세력이 어떻게 해서 함께 할 수 있었는지, 양자의 결합과 분리 과정에 대하여 당대와 후대의 인식은 어떠하였는지, 관련된 인물들의 사상을 살핀다면 양자의 분리 과정에 대해 다른 가설을 세워볼 수는 없는지 등등 새로운 의문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상의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본고는 천도교와 일진회 주도 세력의 계층적 기반을 비교해 보았다. 천도교와 일진회는 정치적 지향과 문명화론을 공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도 세력과 지지 기반의 계층적 성격도 겹쳐 있었다. 손병희와 이용구, 즉 천도교와 일진회 모두 대중의 다양한 욕구들을 수용해 정치적 권력을 쟁취하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당대 상황에서 이는 외세에 대한 의존과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일진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것이고, 천도교는 한 발 물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분리 과정에서 개화지식인 오세창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사실 오세창에게 전통과 민족, 근대는 모두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념이 아니었다. 즉, 유학의 명분론에 매달릴 이유도 없었고, 서구 문명화론에 경도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전통과 민족이란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서화 작품 속에 담겨진 선인의 정신 자체가 아니었을까? 외세의 충격 및 외래 이념의 충돌이 난무하는 혼란한 현실 속에서 그의 이념화되지 않은 민족의식은 때로는 권력 투쟁이나 권력 장악에 이용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중하층민 중심의 개혁을 추진하다가 친일매국단체로 전락한 일진회, 그리고 일진회와 절연하고 근대적 민족종교를 지향했으나 결국 쇠퇴의 길을 걸은 천도교 역시 한국 근현대사의 혼동 속에서 평가절하된 대상들이다. 이들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영문 초록
In modern Korean history, the segregation of Chundogyo and Ilchinhoe, or the action of Chundogyo's segregation of the Ilchinhoe members in September 1906, has been known as an example of the pro-Japanese behavior of the Ilchinhoe and the innocence of Chundogyo. The proposition that is premised on this perception is that Ilchinhoe was consistently a pro-Japanese trading organization and Chundogyo is a modernized national religion. However, it seems necessary to reconsider the separation of Chundogyo and Ilchinhoe, as there have been recent issues that the civil rights movement waged by the Ilchinhoe should be reevaluated. New questions have arisen, such as how Chundogyo and Ilchinhoe were able to work together, how the forces of Chundogyo and Ilchinhoe were able to combine and separate the two, what the perceptions of the contemporary and later generations were, and whether different hypotheses could not be established about the separation process of the two if the thoughts of the people involved were examined.
In order to solve the above questions, this paper compared the hierarchical foundations of the leading forces of Chundogyo and Ilchinhoe. Chundogyo and Ilchinhoe not only shared political orientation and civilization theory, but also overlapped with the leading force and the hierarchical characteristics of the support base. Son Byung-hee and Lee Yong-gu, that is, Chundogyo and Ilchinhoe, are all common in that they tried to acquire political power by accepting various needs of the public. In the situation of the time, this was bound to be accompanied by dependence on foreign powers and opposition from vested interests. It can be said that Ilchinhoe pushed ahead 'nevertheless', and Chundogyo took a step back.
In this separation process, it was confirmed that Oh Se-chang, the enlightened knowledg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fact, for Oh Se-chang, tradition, nation, and modernity were not all abstract and vague ideologies. In other words, there was no reason to cling to the theory of justification for studying abroad, and there was no reason to lean on the theory of Western civilization. For him, wasn't tradition and nation the spirit of ancestors contained in paintings alienated from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In the chaotic reality where foreign shocks and conflicts of foreign ideologies are rampant, his unideologicalized national consciousness sometimes provided an excuse for power struggles or power grabs. Ilchinhoe, which was reduced to a pro-Japanese traitorous organization while promoting reforms centered on the middle and lower classes, and Chundogyo, which insulated from Ilchinhoe and pursued a modern national religion, but eventually walked the path of decline, are also objects that were depreciated amid the confusion of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history. This is why it is necessary to reevaluate them.
목차
Ⅰ. 머리말
Ⅱ. 천도교와 일진회 주도 세력의 계층적 기반 비교
Ⅲ. 천도교와 일진회의 분리를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들
Ⅳ. 천도교 측 오세창의 전통과 민족 인식
Ⅴ. 맺음말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 1906년 천도교와 일진회의 분리 과정 재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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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이승만의 방미외교와 초기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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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육영수, 『근대 한국학의 뿌리와 갈래. 서양 선교사, 일본 관학자, 조선 지식인을 연결하기 또는 다시 뒤섞기』 (돌베개,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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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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