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진선(陳選)의 『소학(小學)』 주석서에 대한 고찰
이용수 4
- 영문명
- A Study on Chen-Xuan's Commentary on Sohak(小學)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 저자명
- 김경남(Kyung-Nam KIM)
- 간행물 정보
- 『태동고전연구』제52집, 363~428쪽, 전체 66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문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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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이 글의 목표는 진선(陳選)의 『소학집주(小學集註)』가 『소학구두(小學句讀)』, 『소학증주(小學增註)』로도 불리는 까닭과 그 판본들이 동아시아에서 얼마나 많이 간행되었는지 확인하고,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어떠한 위상을 갖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확증할 수는 없지만, 『소학집주』는 1469년에 처음으로 편찬되었고, 1473년에는 약간의 수정을 통해 『소학구두』라는 명칭으로 간행되었다. 이후 어느 시점에 『소학집주대전』에 오눌(吳訥)과 진조(陳祚)의 주석과 함께 수록되면서 『증주(增註)』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렇게 저작된 진선의 『소학집주』는 중국에서 1469년 이래 청나라 말기까지 끊임없이 출판되었고,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1634에 간행된 중국목판본 『소학집주』가 소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소학집주대전』의 유입과 함께 율곡 이이(李珥)가 중국의 주석서인 하사신(何士信)의 『소학집성』과 왕오(王鏊)의 『소학집주대전』, 정유(程愈)의 『소학집설(小學集說)』의 내용을 집대성한 『소학제가집주』를 1579년에 편찬하면서, 진선의 『소학집주』는 단 한 차례도 간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으로 전파된 『소학구두』가 조선을 통해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기존의 연구성과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에서는 1600년대 중반 무렵 『소학구두』본이 유입된 이래, 1656년을 기점으로 1934년까지 지속적으로 도쿄(東京), 교토(京都), 오사카(大阪)를 중심으로 진선의 주석서를 간행하였고, 특히 오사카에서 많이 간행되었으며, 메이지[明治] 시대에 와서는 출판사를 중심으로 출판이 이루어지고, 전국의 서점을 통해 판매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문 초록
This paper examines the reasons why Chen-Xuan(陳選)'s Sohak-jipju(小學集註) is also known as Sohak-Gudu(小學句讀) and Sohak-Jeungju(小學增註), as well as the extent of its publication throughout East Asia and its significance in the region. Although it cannot be confirmed with absolute certainty, it is believed that the Sohak-jipju was first compiled in 1469, and after some modifications, it was published under the name Sohak-Gudu in 1473. At some point later, it was included in the Sohak-jipjudaejeon(小學集註大全) with additional annotations by Wu- Nu(吳訥) and Chen-Zuo(陳祚), gaining the title Jeungju(增註). Chen-Xuan's Sohak-jipju continued to be published in China from 1469 until the late Qing(淸) dynasty and had significant influence not only in China but also in Korea and Japan. In Korea, although a 1634 Chinese woodblock edition of Sohak-jipju is preserved, it seems that Chen-Xuan's work was never published locally. Instead,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Sohak-jipjudaejeon, Yulgok Lee-Yi (栗谷 李珥) compiled the Sohak-Jaegajipju(小學諸家集註) in 1597, incorporating contents from Chinese annotations by He-Shixin(何士信)'s Sohak-jipseong, Wang-Ao(王鏊)'s Sohak-jipjudaejeon, and Cheng-Yu(程愈)'s Sohak-jipseol. This indicates that the prior research suggesting that Sohak-Gudu spread to Japan through Korea is likely incorrect. In contrast, in Japan, after the introduction of Sohak-Gudu around the mid-1600s, Chen-Xuan's annotations were continuously published, particularly in Tokyo(東京), Kyoto(京都), and Osaka(大阪), from 1656 to 1934. Osaka was a notable center for these publications. During the Meiji era, publication efforts intensified, with annotated editions being produced by publishing houses and distributed nationwide through bookstores. This indicates a sustained and widespread influence of Chen- Xuan's Commentary on Sohak in Japan throughout this period.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진선의 『소학』 주석서 서명(書名)에 대한 논의
3. 동아시아에서의 『소학집주』(『소학구두』) 판본의 소장 상황
4. 진선의 주석서 『소학집주』(『소학구두』)의 동아시아에서의 위상
5. 맺음말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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