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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한국서예사에서 왕희지 집자비의 출현과 전개

이용수 51

영문명
The Appearance and Development of the Stelae Written in Wang Xizhi’s Characters in the History of Korean Calligraphy
발행기관
한국서예학회
저자명
정현숙(Hyun-sook Jung)
간행물 정보
『서예학연구』제44호, 5~36쪽, 전체 32쪽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4.03.30
6,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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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이 글은 한국 서예사에서 왕희지 집자비의 출현과 전개 양상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통일신라와 고려의 왕희지 집자비와 당나라 왕희지 집자비 글씨를 비교했더니 한국 왕희지 집자비 글씨의 특징이 저절로 드러났다. 조선의 집자비 2기는 사적 용도이며 시대가 멀어 비교 대상에서 제외했다. 왕희지 집자비는 7세기 후반에 중국 당나라에서 처음 건립되었고, 그 영향으로 한국에서는 8세기 통일신라에서 처음 건립되었다. 통일신라의 첫 왕희지 집자비는 <皇福寺碑>이며, 다음은 801년에 건립된 <鍪藏寺碑>, 마지막은 886년에 건립된 <沙林寺碑>다. 그중 명문으로 확인되는 것은 <사림사비>며, 나머지는 추정되는 것이다. 현전하는 고려의 왕희지 집자비는 1295년에 건립된 <麟角寺碑>뿐이다. 중국에서는 당 태종(재위 626-649)을 시작으로 이후의 황제들이 대를 이어 왕희지의 글씨를 애호했기 때문에 왕희지 집자비는 대부분 황명으로 건립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고종대(649-683)의 <大唐三藏聖敎序>(<集字聖敎序>, 672), 현종대(713-755)의 <興福寺斷碑>(721), 문종대(827-840)의 <金剛經>(832)이다. 집자는 주로 승려가 담당했는데 이런 전통이 이어져 통일신라와 고려의 집자비도 왕명으로 승려가 집자했다. 통일신라의 <황복사비> 글씨는 당나라의 <집자성교서> 글씨와 흡사하다. 글씨, 비문 머리의 서술 양식, 문장의 배열 형식이 <집자성교서>와 흡사하여 왕희지 집자비로 볼 수 있는 <무장사비>는 당나라의 <집자성교서>, <흥복사단비>처럼 승려, 특히 황룡사 승려가 집자했을 가능성이 크다. 옹방강이 언급했듯이 <무장사비> ‘崇’의 상부 세 점의 필법이 왕희지의 <난정서>와 흡사하고 더 나아가 <난정서>를 저본으로 한 <집자성교서>와 흡사한 것도 하나의 근거다. 그리고 세로 계선만 그었으나 자간도 정연한 것, 해서의 필의가 많은 것, 개성적인 글자의 특징은 고려의 <인각사비>와 닮아 <인각사비>의 집자승인 죽허가 <무장사비>의 글씨를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왕희지 집자비는 당나라 <집자성교서>와 <흥복사단비>를 저본으로 했기에 字體가 닮기는 했으나 書風은 조금 다르다. 중국 왕희지 집자비 글씨는 行氣가 많아 유려하지만 한국 집자비 글씨는 해서의 필의가 강해 瘦硬하다. 그리고 중국 글자와 다른 특징적인 글자는 한국 집자비들끼리 닮기도 하여 고려 <인각사비>의 집자승 죽허가 중국 두 비에서 집자하면서, 동시에 전대인 통일신라의 집자비도 참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통일신라의 왕희지 집자비는 고려의 집자비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영향을 받은 고려의 글씨가 영향을 준 통일신라의 글씨보다 더 유창하다. 이는 송나라, 원나라와의 빈번한 문화적 교류로 인해 고려 사회 전반에 행초서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의 왕희지 집자비 글씨가 다른 것도 나라, 시대, 그리고 집자인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는 시공의 차이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영문 초록

This paper is to look into the appearance and development of the stele written in the characters of Wang Xizhi(王羲之 集字碑, Wang Xizhi jipjabi), the famous calligrapher of the Eastern Jin in China. I compared the characters of Wang Xizhi jipjabi of the Unified Silla(統一新羅) and Goryeo(高麗) dynasties in Korea with those of the T’ang(唐) dynasty in China. As a result, I found out the characteristics of the writing of Wang Xizhi jipjabi of Korean through the similarity and difference. Wang Xizhi jipjabi was first built in the late 7th century in T’ang dynasty. To that effect, it was first built in the 8th century in the Unified Silla dynasty. The first of the Unified Silla is Hwangboksa Stele(皇福寺碑), the second Mujangsa Stele(鍪藏寺碑) built in 801, the last Sarimsa Stele(沙林寺碑) built in 886. Of the three, the last is the only one identified by the writing of the stele. Wang Xizhi jipjabi of Goryeo in existence is Ingaksa Stele(麟角寺碑) built in 1295. In China, most emperors since Taizong(太宗) were fond of Wang Xizhi’s calligraphy. Accordingly, Wang Xizhi jipjabi was mostly built by the imperial order, and collecting characters was mainly performed by the Buddhist monk. The typical ones are Jizi Shengjiaoxu(集字聖敎序) in the reign of Gaojong(高宗), Xingfusi Stele(興福寺碑) in the period of Xuanjong(玄宗), and Diamond Sutra(金剛經) in the time of Wenjong(文宗). Following the tradition of China, in Korea, monk collected Wang’s characters by the king’s order as well. The characters of Hwangboksa Stele of the Unified Silla resemble those of Jizi Shengjiaoxu of T’ang. The characters and description form of the head sentence of Mujangsa Stele are similar to those of Jizi Shengjiaoxu, so Mujangsa Stele can be considered as Wang Xizhi jipjabi. There is a strong possibility that a monk collected the characters of Mujangsa Stele like Jizi Shengjiaoxu and Xingfusi Stele. Especially, he would be the monk of Hwangryongsa(皇龍寺) because the character ‘皇龍寺’ was engraved on the end of the first line. The name of compiler Kim Yukjin(金陸珍) is written above ‘皇龍寺’. In general, the first the name of compiler and next that of writer were recorded in the sentence on the stele. As Wen Fanggang(翁方綱) of Qing(淸) mentioned in the record of Kim Jeonghi on the left side of Mujangsa Stele, the three strokes on the upper part of the character ‘崇’ on the stele is identical to those of Lantingxu(蘭亭序) Wang wrote in 353. It is one of the evidences that Mujangsa Stele is Wang Xizhi jipjabi. And the point that the space between character is regular although only vertical lines were drawn, that the writing includes the bush stroke of the regular script, and that the characters carry personal characteristics rather resemble to those of Ingaksa Stele of Goryeo. Therefore, it is highly possible that monk Jukje(竹虛) who collected Wang’s characters for the writing of Ingaksa Stele copied the writing of Mujangsa Stele. The form of characters is similar to that of T’ang stelae because Wang Xizhi jipjabi of Korea is based on those of China. But the the style of writing is different each other. The writings of T’ang are flowing due to the brush strokes of the running script, but those of the Unified Silla and Goryeo is stiff due to those of the regular script. In addition, a few characteristic characters on the stelae of the Unified Silla and Goryeo resemble each other. It means that monk Jukhe would see the writing of Wang Xizhi jipjabi of the Unified Silla, following those of T’ang.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Wang Xizhi jipjabi of the Unified Silla influenced on that of Goryeo. Meanwhile, the writing of Wang Xizhi jipjabi of Goryeo influenced by the Unified Silla is better than that of the Unified Silla that influenced on Goryeo. The reason is that the running and grass scripts were prevalent in the Goryeo society due to

목차

Ⅰ. 머리말
Ⅱ. 집자비의 정의와 시원
Ⅲ. 한국의 왕희지 집자비 출현과 전개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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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Hyun-sook Jung). (2024).한국서예사에서 왕희지 집자비의 출현과 전개. 서예학연구, (),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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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Hyun-sook Jung). "한국서예사에서 왕희지 집자비의 출현과 전개." 서예학연구, (2024):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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