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학술논문

원 제국 제왕(諸王)의 고려 유배 양상

이용수 50

영문명
A Review of the Aspect of the Yuan Dynasty Kings’(諸王) Exile to Goryeo
발행기관
한국세계문화사학회
저자명
권용철
간행물 정보
『세계역사와 문화연구』제68집, 129~155쪽, 전체 27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3.09.30
6,040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 연구에서는 『고려사』에 기록된 원 제국 종실 제왕의 유배 양상에 대해서 검토했다. 『고려사』에 남아 있는 해당 기록은 아주 단편적이기 때문에 누가, 언제, 어디로 유배를 왔는가에 대한 무미건조한 정보만 알려주고 있다. 유배의 양상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예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원사』 등 원 제국 측 기록과 함께 원 조정의 정국을 살펴보아야 종실 제왕이라는 높은 위상을 가진 인물들이 고려로 유배를 온 이유를 알 수 있다. 원 제국의 제왕은 칭기스 칸 가문에 속한 ‘황금씨족’으로, ‘일반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왕을 외지(고려)로 유배를 보냈다는 것은 제국 내에서 정치적 격동이나 분란이 일어난 결과인 경우가 많았다. 유배를 오게 된 사유가 기록에서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제국 내에서 일어난 반란에 연루되었거나 제위계승분쟁에 휘말리면서 유배를 오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쿠빌라이 시기에는 특히 북방 지역에서 쿠빌라이의 권위에 도전하는 반란이 종종 일어났는데, 고려에 유배를 왔던 시리기는 그 자신이 직접 반란을 주도했고 1280년대 말에서 1290년대 초에 걸쳐 일어난 나얀-카단의 반란에 가담한 제왕들 역시 고려에 유배되면서 『고려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쿠빌라이가 사망한 이후가 되면 원 제국 내에서 카안(황제)의 자리를 둘러싼 계승분쟁이 점점 격화되면서 이에 연루된 제왕들이 고려로 유배를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 중에서 토곤테무르는 유배라는 역경을 거친 끝에 카안으로 즉위하게 된다. 본고에서는 원 제국 제왕의 고려 유배라는 소재를 통해서 고려와 원 양쪽의 기록을 비교하면서 검토하는 방법론을 활용했다. 고려와 원의 관계는 이전의 한중관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쪽의 자료를 번갈아 활용해서 연구해야 하는 주제가 앞으로도 많이 발굴되어 고려-원 관계의 특수성을 밝힐 필요가 있다.

영문 초록

This study examines the exile of the kings of the Yuan Empire as recorded in Goryeo history. The surviving records from Goryeo are very short and provide only bland information about who went into exile, when, and where. The “why” of the exile is less specific or not recorded at all, so we need to look at the political situation along with the records of the Yuan Empire, such as the Yuan History, to understand or estimate the reasons why such a high-profile figure as the Kings went into exile in Goryeo. In the Yuan empire, the Kings was a member of the “golden clan” of Chinggis Khan and was not a “commoner”, so the exile of the Kings to a foreign country(Goryeo) was often the result of political turbulence or disturbances within the empire. In the cases analyzed in this article, except for a few cases where the reason for the exile is not clear, we can see that all of them were involved in rebellions within the empire or were involved in succession disputes. During Qubilai’s reign, rebellions challenging his authority often broke out, especially in the northern regions, and Sirigi himself led a rebellion, while the kings who participated in the Nayan-Qadan rebellion of the late 1280s and early 1290s also left their mark on Goryeo history through their exile. After Qubilai’s death, the succession dispute over the position of Qa’an(emperor) within the Yuan empire became increasingly intense, and the Kings involved in the dispute often went into exile in Goryeo. Examining the exile of Kings of the Yuan Empire, which remains very fragmentary in Goryeo history, in connection with Chinese records such as the Yuan History, is an inevitable task in order to understand the background of the emergence of Goryeo records about exile of Yuan Kings. It is also a task that allows us to more specifically confirm and supplement the vague accounts of exile to the sea islands in Chinese records through Goryeo history. While this article focuses on the exile of a Kings of Yuan Empire and compares the records of both Goryeo and Yuan, this methodology can also be applied to examine various phenomena or figures that emerged due to the specificity of the Goryeo-Yuan relationship.

목차

Ⅰ. 머리말
Ⅱ. 쿠빌라이 재위 시기 몽골 제왕의 고려 유배
Ⅲ. 쿠빌라이 시기 이후 몽골 제왕의 고려 유배
Ⅳ. 맺음말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참고문헌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인용하기
APA

권용철. (2023).원 제국 제왕(諸王)의 고려 유배 양상. 세계역사와 문화연구, (), 129-155

MLA

권용철. "원 제국 제왕(諸王)의 고려 유배 양상." 세계역사와 문화연구, (2023): 129-155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