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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년대 渤海-唐 전쟁 시기의 ‘海賊’과 新羅의 北進經略

이용수 163

영문명
'Pirates' during the Balhae-Tang War in the 730s and Silla's advancement into the northern area
발행기관
백산학회
저자명
권창혁
간행물 정보
『백산학보』第125號, 57~97쪽, 전체 41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3.04.30
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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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732년 9월 발해는 ‘海賊’들을 포섭하여 이들로 하여금 당의 登州를 습격하도록 하면서 큰 피해를 입혔다. 또한 이후 이 ‘海賊’들은 발해의 전략적 의도에 따라 黃海 연안 및 해상에서 적대국을대상으로 일종의 통상파괴전(Commerce raiding)을 수행하였다. 즉 발해는 이 ‘海賊’들을 마치사략선(私掠船, Privateers 혹은 Corsairs)처럼 활용하였던 것인데,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보편적인 양상이었다. 이러한 ‘海賊’ 집단의 실체란 대체로 고구려 멸망(668) 이래 軍閥, 혹은 豪族과같은 형태로 자리 잡은 고구려 유민이나 말갈 계통의 재지 해상세력들로 추정되며, 이는 즉 일련의역사적 과정을 거쳐 완충지대로 남게 되었던 요동~한반도 북부의 지정학적 환경의 결과물이었다. 아울러 이 같은 ‘海賊’ 집단의 활용은 당시 거란·돌궐과의 맹약에 따른 武王의 馬都山 親征 (733년 윤3월)을 앞둔 상황에서 발해 정규군의 主攻을 보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정규 병력을 동원했던 助攻, 혹은 陽動 전략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 이러한 ‘海賊’의 활동은 그들의 활동 범위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던 신라에게 있어서도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732년 登州 습격 직후 당이 對발해 출병을 요청하자, 신라는 여기에 적극 호응하여 732년 겨울~733년 봄 무렵에 걸쳐 ‘渤海南境’을 공략하였다. 더나아가 이후 양국 공통의 현안으로 떠올랐던 ‘海曲의 賊’을 진압한다는 명분 아래, 신라는 당에게그 동안 완충지대로 방치되어 왔던 浿江 유역의 經略을 위한 군사·행정적 권한, 즉 ‘浿江置戍’를강력하게 요구하였으며, 735년 봄에 이르러 이를 최종적으로 승인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뿐만아니라 신라는 당이 성덕왕에게 加授한 ‘(持節)寧海軍使’로서의 권한을 내세우며 ‘海賊’ 활동의근원이 되었던 재지세력들을 정치·군사적으로 압박 혹은 회유하였다. 이 같은 신라의 ‘浿江置戍’란 물론 과거 무열·문무왕대 이래 北進經略에 대한 숙원을 마무리하는 중대한 의미가 있었다. 다른 한편 실질적인 의미로서는 북방에 대한 더욱 장기적·적극적인경략을 토대로 黃海 연안에 창궐하던 ‘海賊’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해결을 추구하는 것이기도했다. 그 결과물이 곧 長口鎭의 설치 및 운영이었으며, 이를 통해 신라는 대동만 일대(장산곶~옹진반도) 해역의 제해권을 장악하며 당-신라 간 해상 교역·교섭로와 관련한 항행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730년대 발해와 연계된 ‘海賊’의 활동은 분명한 위협이었지만, 또한명분과 실질 양 측면에서 한반도 서북방면에 대한 신라의 北進經略을 推動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영문 초록

In September 732, the Balhae Dynasty attracted ‘pirates’ as allies, and had them raid on 登州, the main port of the Tang Empire, causing great damages. In addition, after the raid, these pirates carried out a commercial raiding strategy targeting the hostile countries along the Yellow Sea coast and sea routes in line with the strategic intention of the Balhae Dynasty. In other words, the Balhae Dynasty used these pirates like Privateers. This was a pattern that could be found universally in other eras and regions. It is presumed that the entity of these pirate groups was composed of local residents such as Goguryeo refugees or Mohe clans, who had been settled in a kind of warlords since the fall of the Goguryeo dynasty(668). Through various historical processes, a geopolitical buffer zone was formed from Manchuria to the nor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That is why these pirate groups appeared. Above all, it should be taken into consideration that the situation was ahead of King Wu's expedition to 馬都山(March of the leap month in 733) according to the oath with Khitan and the Turks. In other words, it can be understood as an auxiliary attack in which irregular troops were mobilized for the purpose of supporting the main attack of the regular army of the Balhae Dynasty. On the other hand, the activities of pirate groups were recognized as a serious threat to the Silla Dynasty. Therefore, immediately after the raid on 登州, the Tang Empire requested troops to attack the Balhae Dynasty, and the Silla Dynasty responded positively. Accordingly, the army of the Silla Dynasty attacked '靺鞨南鄙', through the northwest of the Korean Peninsula from the winter of 732 to the spring of 733. Furthermore, under the pretext of suppressing the '海曲之賊', the Silla Dynasty strongly demanded the Tang Empire to '浿江置戍', it was a Military and administrative authority for the management of the 浿江 basin, which had been neglected as a buffer zone between the two countries. As a result, it was finally approved in the spring of 735. Also, the Silla Dynasty used the title of ‘(持節) 寧海軍使’ to pressure or coax the regional groups, which had been the source of pirate activities. ‘浿江置戍’ had the meaning of finishing the Silla’s long-cherished desire for advancement to the north, since the reigns of Kings Muyeol and King Munmu in the past. On the one hand, in a practically, this was also to take a fundamental solution of the pirate problem that had been rampant along the coast of the Yellow Sea based on active intervention on the local region. The ultimate result of ‘浿江置戍’ was the installation and operation of ‘長口鎭’. Through this, Silla was able to strengthen its control on the coast of the Yellow Sea and secure the safety of navigation. In other words, the pirate activities linked to the Balhae Dynasty in the 730s were a clear threat, but at the same time, they were also a major factor in the Silla Dynasty's advancement to the north.

목차

Ⅰ. 머리말
Ⅱ. 渤海-唐 전쟁의 전개와 ‘海賊’의 활동
Ⅲ. 新羅의 ‘浿江置戍’와 ‘海賊’의 진압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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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혁. (2023).730년대 渤海-唐 전쟁 시기의 ‘海賊’과 新羅의 北進經略. 백산학보, (), 5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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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혁. "730년대 渤海-唐 전쟁 시기의 ‘海賊’과 新羅의 北進經略." 백산학보, (2023): 5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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