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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화암서원(花巖書院) 연구

이용수 64

영문명
A study on Hwaam Seowon
발행기관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저자명
김영모(Kim, Youngmo)
간행물 정보
『충청학과 충청문화』제29권, 159~188쪽, 전체 30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0.12.30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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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고는 화암서원의 건립과 사액과정 및 보령현에서 추진되었던 또 다른 서원건립 운동의 고찰을 통하여 화암서원에 대해 그동안 제기해온제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화암서원은 1610년 충청도관찰사 정엽과 구계우의 발의로 1624년에 이지함, 이산보의 향사가 이루어져 1686년 ‘화암’으로 사액된 문중서원이었다. 1610년에 한산이씨 사우가 창건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기 보령현에서의 한산이씨의 위상과 이산보의 사위 정엽의 정치적 역량이 크게 작용하였다. 하지만 정엽의 의도대로 1610년 사우건립은 실현되지 못하였는데 보령현의 주요사족인 광산김씨와 한산이씨가 북인 남인계와 서인 노론계로 당색을 달리하였고 이지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주요 원인으로 파악되었다. 14년 후인 1624년에 이지함, 이산보의 향사가 이루어진 것은 인조반정의 성공과 관계되고 그 과정에서 서인 노론의 광산김씨 김공권계 김해수의 역할이 컸다. 김공권계는 이지함, 이산보과의 학연, 지연, 혈연으로 맺어졌기 때문이다. 화암서원은 서원의 명칭 주체, 시기 , 위치, 배향인물과 서천군의 효정사와의 비교를 통하여 한산이씨 사우로 출발하여 사액된 문중서원임이 입증되었다. 두 사우 모두 한산이씨 인물만이 배향되었고 내외후손들이 주도하에 세거지 인근에 사우를 건립하였기 때문이다. 화암서원의 사액과정에서도 광산김씨 서인 노론계인 김공권계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였다. 1차 사액 소청 소두인 김황은 김해수의 손자인 김여남의 재종제로 당시의 서인계의 재지사족인 안동김씨, 광산김씨, 한산이씨, 평강채씨, 경주이씨, 능성구씨 등이 모두 광김의 외예로 정치적 동맹이 가능하였다. 2차 소두인 최문해 또한 서인 노론의 송시열과 학연으로 연결되어 광산김씨 서인계인 김공권계와 인연을 맺고 있음이 자료를 통하여 밝혀졌다. 보령현의 향선생으로 불리던 김맹권의 향사를 위한 서원건립 운동이 숙종말기까지 남인계를 중심으로 추진되었으나 서원건립 지령으로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음이 또한 밝혀졌다. 김맹권계는 이산해계의 북인남인계열이었고 김공권계는 이산보의 서인 노론계열이였다. 이것은 김맹권 가계의 『가승』과 김공권 가계의 『나촌유사』에 수록된 인물들을 통하여 살필 수 있었다. 따라서 서인계의 이지함, 이산보가 향사된 서원에 김맹권의 향사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였다. 보령현의 재지사족 관련 자료가 영세한 상황에서 이 두 자료는 화암서원을 둘러싸고 제기되어온 제 문제를 살펴보는데 결정적 자료로 색(色)이 다르면 제사에도 참석하지 않는다는 삼불통의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영문 초록

목차

1. 머리말
2. 사우(祠宇)의 건립배경
3. 사액서원 ‘회암(花巖)’
4. 또 다른 서원건립 운동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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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모(Kim, Youngmo). (2020).화암서원(花巖書院) 연구. 충청학과 충청문화, 29 , 159-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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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모(Kim, Youngmo). "화암서원(花巖書院) 연구." 충청학과 충청문화, 29.(2020): 159-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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