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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尹愭의 『泮中雜詠』에 나타난 成均館 齋生들의 생활상과 교육

이용수 3

영문명
The Study on Life and Activity of Confucian scholar in SungKyunKwan -centered on Youn-Gee(尹愭)’s『BanJoongJopYoung(泮中雜詠)』-
발행기관
동방한문학회
저자명
金容載(Kim, Yong-jae)
간행물 정보
『동방한문학』제83호, 271~302쪽, 전체 32쪽
주제분류
인문학 > 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0.06.30
6,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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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주지하시다시피 조선은 儒學 - ‘性理學’ - 을 治國의 이데올로기로 삼아 건국된 왕조이며, 따라서 인간 개개인의 강상윤리와 사회질서는 강력한 성리학적 이념에 따라 출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을 존속시키기 위하여 조정에서는 不斷히 성리학적 이념을 갖춘 인재양성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인재들이 훗날의 위정자와 관료로 진출하는, 소위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 완성이 성공적 정착될 수 있었던 요인은 곧 불멸의 ‘과거시험’이었을 것이다. 신분제가 엄격한 당시에, 좀 더 높은 지위의 관료나 위정자로 진출할 수 있었던 통로가 科擧였으며,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라도 京鄕 각지의 교육기관들은 그 수를 왕성하게 늘려갔다. 이때, 명실상부할 만큼 학교로서의 위상을 갖춘 곳은 ‘서당’․‘향교’․‘서원’그리고 서울의 ‘성균관’이다. 이 중 지금의 ‘대학’과 같이 고등교육을 담당했던 곳은 ‘성균관’과 ‘서원’뿐이었다. 성균관에 입학한 유생들, 특히 동․서재에서 기숙하던 齋生들은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선발 인원이 극소수로 제한되어 있던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文廟와 함께 기숙하고 공부할 수 있었던 재생들의 삶은 단연코 ‘제사’와 ‘교육’이 주된 의무이자 책임으로 다가왔다. 전자는 대성전에서, 후자는 명륜당에서 시행되었는데, 재생들은 제사라는 엄숙한 분위기와 함께, 향후 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그 삶이 매우 경직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도 그럴만한 이유는 거재유생의 생활 터가 바로 文廟와 함께 공유했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이들의 삶은 공맹이 추구하였던 유자로서의 품격을 수신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 行動擧止 하나하나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더욱이 조선중기로 가면서 『朱子家禮』가 전래되고, 조선성리학이 禮學으로 학풍이 변모되면서, 이들의 생활은 이른바 ‘선비’의 전형이 되어야만 했다. 또 이들은 학문적으로 주자학에 집중했는데, 이는 과거시험이 거의 『집주』에 기반한 製述과 明經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즉 『集註』에 얼마나 충실하였는지의 여부가 관건인 셈이었다. 따라서 재생들에게는 『집주』를 저본으로 하여 공맹유학과 주자가례의 본지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였다. 그런데 이들의 생활과 교육에 관한 일상을 漢詩와 解說로 남긴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尹愭의 『泮中雜詠』 ‘220首’다. 윤기(1741~1826)는 居齋儒生 시절을 거쳐 영조代로부터 순조代에까지 여러 관료를 역임한 인물이며, 『泮中雜詠』220수를 통해 성균관에서의 고단한 삶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본고는 이 『반중잡영』이 갖는 의미, 그리고 그 안의 作詩와 해설을 선별하여 당시 재생들의 생활상과 교육이 어떠했는지를 탐색한 것이다.

영문 초록

This paper is based on the Youn-Gee(尹愭)’s『BanJoongJopYoung(泮中雜詠) 』 on the lifestyle of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Youn-Gee(尹愭) was a student who studied in an elite group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based on his experience, he wrote 220 poems and publicly criticized their lives. because the Joseon Dynasty had a very different attitude toward intellectuals from the time it was founded to the second half of the Joseon Dynasty. Beautiful customs declined, old laws and institutions were abolished, low-ranking slaves frequently slandered intellectuals, and administrative officials or executives roughly settled their duties. The total difficulty with the exclusion of intellectuals led him to write this poem. In particular, in the late Joseon Dynasty, officials showed an exclusive academic climate due to the deepening division of the peninsula. The appearance of living in the dormitory proves this well. Intellectuals only took collective action on their side. I could never find what the intellectuals used to show me. He hoped that Joseon’s intellectuals would awaken in the 18th century. He also wrote this poem to insist on improving the treatment of intellectuals.

목차

1. 序
2. 尹愭의 생애 및 저술 동기
3. 齋生(居齋儒生)들의 기숙과 생활
4. 齋生들의 교육목표․과정․평가
5. 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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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

金容載(Kim, Yong-jae). (2020).尹愭의 『泮中雜詠』에 나타난 成均館 齋生들의 생활상과 교육. 동방한문학, (83), 271-302

MLA

金容載(Kim, Yong-jae). "尹愭의 『泮中雜詠』에 나타난 成均館 齋生들의 생활상과 교육." 동방한문학, .83(2020): 27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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