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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일제 말기 탈출 한인 청년에 대한 중국 군사당국의 인식과 정책

이용수 97

영문명
The Chinese military’s perception and policy of escaping Koreans
발행기관
한국근현대사학회
저자명
孫艶紅(SUN Yan-hong)
간행물 정보
『한국근현대사연구』제98집, 137~169쪽, 전체 33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1.09.30
6,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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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중국 국민당 군사당국은 광복군 창립 초기에 광복군 활동에 무관심하고 지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1944년에 들어 늘어난 탈출 한인 청년들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강화시켰고 이들을 전쟁포로와 같이 대우했다. 태륜기와 황갑수의 경우도 처음에 접선할 때부터 이들의 물건을 압수하고 수용시설에 억류하였다. 태륜기가 중국 군대에 남아 항일작전을 하자는 한인 동지의 건의를 거절하고 임정으로 가기를 고집하여 ‘포로’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수용소에서 보내야 했다. 황갑수 일행은 중경행을 원했지만 중국 군사당국의 요청을 수락해 현지에 남아 중국군과 항일전을 하다가 태륜기보다 더 빨리 광복군과 만날 수 있었다. 태륜기 일행이 수용소에 수용되던 동안 광복군 측의 인사들이 꾸준히 찾아와 강연, 교육, 위문을 하고, 송금까지 했지만, 곧장 광복군에 편입되지 못했다. 그 원인은 당시 임시정부·광복군과 중국 정부·군사당국의 친소 관계, 탈출 한인에 대한 중국 정부의 기본 방침, 태륜기 일행의 복잡한 구성, 그리고 수용소에서 탈출한 전력 때문이었다. 탈출 한인 청년에 대한 중국 정부 당국의 인식과 정책은 크게 광복군에 대한 점검 작업을 시행한 1943년 5~7월 전후와 「한국광복군원조판법」이 체결, 시행된 1945년 4~5월 전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점검 작업을 시행하기 전에도 탈출 청년에 대한 ‘교화’ 절차가 있었지만 엄격하지 않았고 광복군의 요청이 있을 때 간첩 혐의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광복군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점검 결과 보고서에 나타난 광복군에 편입된 ‘포로’ 출신 대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평가가 중국 국민당 군사당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임정과 광복군 측의 대우개선 요구가 수용되어 탈출 한인들을 일본인 포로와 분리해서 수용했지만, ‘9개 준승’의 취소에 따른 광복군과 중국군사위원회 간의 정식관계가 단절되는 관계로 억류된 탈출 한인에 관한 교섭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영문 초록

The Chinese military regarded the escaped Koreans as ‘prisoners’. In the case of Tae Ryun-gi(太倫基) and Hwang Gap-soo(黃甲秀), their possessions were confiscated and detained in camps. Tae Ryun-gi refused a proposal from a Korean comrade to remain in the Chinese military and fought against Japan, and had to spend a long time in a camp. On the contrary, Hwang Gap-soo and his companions accepted the request from the Chinese military authorities and remained there to participate in the anti-Japanese match. They met with the Korean Liberation Army faster than Tae Ryun-gi. While Tae Ryun-ki and his companions were in the camp, officials from the Liberation Army visited to give lectures, education, consolation, and even remit money. However, they were not immediately incorporated into the Liberation Army. This was due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in Shanghai and the Chinese government, the Chinese government’s basic policy on Koreans who escaped from Japanese army, and the influence of the complicated composition of Tae ryun-gi and his companions. The Chinese government’s perception and policy on Koreans who escaped from Japanese army, can be divided into around May-July 1942, when the Liberation Army was inspected by Chinese army, and around April-May 1945, when How to aid Korea Liberation Army was signed and enforced.

목차

1. 머리말
2. 한국광복군의 대원 초모활동 및 중국 군사당국과의 관계
3. 탈출 한인 청년에 대한 중국 군사 당국의 인식과 정책
4. 太倫基와 黃甲秀 일행의 탈출 경위 및 중국군에서의 체험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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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艶紅(SUN Yan-hong). (2021).일제 말기 탈출 한인 청년에 대한 중국 군사당국의 인식과 정책. 한국근현대사연구, 98 , 137-169

MLA

孫艶紅(SUN Yan-hong). "일제 말기 탈출 한인 청년에 대한 중국 군사당국의 인식과 정책." 한국근현대사연구, 98.(2021): 137-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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