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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조의 사회사적 의미 고찰

이용수 743

영문명
A study of the social meanings of sanjo
발행기관
국립국악원
저자명
이보형(Yi Bo Hyong)
간행물 정보
『국악원논문집』제19집, 189~219쪽, 전체 31쪽
주제분류
예술체육 > 음악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09.06.30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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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한국 전통음악 가운데 산조는 음악적 구성력이 뛰어나고 예술성도 높아 가장 사랑을 받고 있고 그래서 전승력이 왕성한 음악 부문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작 이 음악이 어떤 문화적 환경에서 어떻게 생성되고 어떤 문화적 변동을 겪으면서 오늘에 까지 전승되어 왔는가 하는 사회사적 연구는 아직 황무지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산조의 역사를 기술할 때에 흔히 논의되는 것은 조선 왕조 말기에 위대한 가야금산조의 명인 김창조가 산조를 창조하였다는 것뿐이다. 만일 산조 사회사가 김창조 이전에 많은 문화적 변동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런데도 그전에 없었던 산조를 김창조가 갑자기 창조한 것인양 기술하게 되면 산조의 사회사에 대한 논의는 얼마나 그 폭이 좁게 기술될 것인가? 김창조는 분명 오늘날 산조가 있게 한 위대한 음악인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한국전통음악은 항상 기왕에 있는 음악을 토대로 변화시켜 창조하는 이른바 탁곡 창조 방식이었다는 것을 두고 보면, 당시까지 없었던 음악 부문이 갑자기 김창조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논하는 것은 한국음악의 창조 원리에 맞지 않아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김창조 이전에 원초적인 산조가 전승되었고 김창조는 이것을 토대로 현대적인 산조를 창조하였고 이것이 한국의 근대 문화적 격변기를 넘기며 전승력을 갖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사회사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김창조 이전의 산조 음악 문헌에 관심을 갖고 여기에 나타난 산조가 생성하게 된 문화배경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산조라는 음악 부문은 본디 심방곡 이라 일렀다는 고로 음악인들의 증언이 있었는데 마침 김창조가 산조 창조 이전 조선시대 가객 안민영이 지은 금옥총부(金玉摠部) 라는 기행문에 풍류객들의 방중악으로 기악 심방곡을 연주하였다는 기사가 두 번이나 있다. 여기에 보이는 풍류방의 방중 심방곡을 원초적인 전기(前期) 산조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산조는 김창조보다 훨씬 이전에 생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방곡이라 이르는 전기 산조는 어떤 계기로 생성되었을까? 이를 시사하는 기사가 금옥총부에 보인다. 여기에는 가곡을 부르는 여자 가객들이 방중 판소리도 불렀다는 기사가 두 번이나 보인다. 판소리는 본디 광장에서 공연하던 것인데 그 예술성이 높아지면서 방중 판소리로 발전하였고 여자 가객이 방중에서 판소리를 부른 것도 그런 문화적 환경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중 판소리 창자가 정가를 부르는 가객이었다는 것은 그런 문화환경에서는 창우집단에 속하는 고인(工人)들이 풍류방의 사범과 마스터 주자 율객으로 참가하며 판소리 음악적 특성을 갖는 기악을 심방곡으로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되는데 여기에서 산조가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일이다. 조선 후기에 상류사회에서 서민적인 발랄한 예술에 대한 향수문화가 성행하면서 이 방중 판소리가 급속히 확산되고 이런 문화적 추세에 따라 방중 심방곡 즉 전기 산조도 급속히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근대화되면서 전통문화도 급변하게 되고 이런 문화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판소리 명창들로 하여금 그때까지 즉흥적인 특성에서 벗어나 고정선율 특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문화환경은 즉흥성이 강한 방중 심방곡 즉 전기 산조에도 충격을 주어 고정선율로 나가게 되는데 그 선두에 김창조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김창조에 의하여 방중 심방곡은 비교적 고정선율에 가깝게 변하고 진양에서 우조-돌장-평조-계면조로 짜여지듯이 악조의 틀이 일정하게 짜여지고 판소리 더늠들이 많이 응용되어 혁신적인 변화를 이룬 것이 후기 산조의 탄생이다. 김창조가 이렇게 방중 심방곡 즉 전기 산조를 혁신하여 후기 산조를 발전시키면서 이것이 대단한 인기를 끌게 되었고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다른 산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산조 부문이 이렇게 뛰어난 예술성이 있는 음악으로 발전하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이 여러 문화적 격변기를 맞으면서 창우집단의 문화가 붕괴되어 산조가 단절위기를 맞게 되지만 이를 극복하고 오늘에까지 살아남는 전승력을 지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단절되어 가는 전통음악을 전승시키기 위하여 대학교에 국악과가 개설되고 여기에 산조는 중요한 전공실기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산조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연주자를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로 인정해서 산조 공연집단의 사회적 위상이 크게 향상되고 일반 학생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학습하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영문 초록

Sanjo (산조 散調, san = scattered; jo = modes/melodic types) is regarded as a highly formulated instrumental solo music and an actively transmitted repertory among Korean traditional music. However, studies of sanjo have not yet been explored its social and cultural backgrounds, particularly focused on historical perspectives on how it generated and transmitted in the process of changes. Instead the studies of sanjo have so far been limited to the descriptions that it was invented by Kim Changjo (1856-1919), myeongin (名人, myeong = renowned in = person master musician) of gayageum sanjo, as a new genre in the latter half of the 19th century. This claim raises a basic question about the process of generating sanjo. There is no doubt that Kim Changjo was regarded as one of the most pioneered musicians who made simbanggok (심방곡 心方曲, sim = heart bang = direction gok = a piece of music), that is an original sanjo form, modernized. Nevertheless this does not mean that he was the first musician and composer to have created it as a new repertory. Conventionally there had been musical practices in creating and varying musical pieces based upon stock melodies or pieces of music that were already existed in Korean traditional musical culture. This method of forming new music was called takgok 度曲 . Thus it would not fit the theory that sanjo was invented on the gayageum as a solo music by Kim Changjo. My researches (1995; 2001) show that he developed simbanggok which had already been existed and been practised before his time. Then his own work that became later called the Kim Changjo Ryu (流 = version, school, style) Gayageum Sanjo was enormously contributed to widespread and transmission to the next generations throughout the rapid changes of modern Korean society. This article examines the process of forming sanjo in relation to its musical and social backgrounds of the late Joseon dynasty. Sanjo was used to be called simbanggok according to the senior musicians, and Geumokchongbu (金玉寵部, anthology of poems) compiled in around 1881 and 1885 by An Minyeong, gagaek (가객 歌客, ga = (classical) vocal music; gaek = guests), informs us that simbanggok rendered by some instruments as bangjung-ak (房中樂, bangjung = interior of a room; ak = music) for pungnyu-gaek (風流客, pungnyu = gathering for music-making, singing, dancing & reciting poems) by referring twice. So I would consider the bangjung simbanggok performed in the pungnyu-bang as the primordial Early Sanjo .. This implies that sanjo was formulated much earlier period than Kim Changjo did. Then an issue can be raised the time of generating the Early Sanjo or simbanggok. Geumokchongbu also informs us that female entertainers or the gisaeng sang the bangjung pansori. Pansori (narrative song performed one singer accompanied by a drum) originally performed at the open spaces. As it became highly artistic form, it developed into the bangjung pansori by the demand of the upper class audience. Thus the changes of the performance settings in pansori performance from the open space to the interior of a room imply that cultural and social changes were undergone. The audience of the bangjung pansori were also singers who practised classical vocal music ( jeongga 정가 正歌 ). Regarding performance settings or venues gagaek sang pansori in bangjung, and goin (musicians) belonged to the Changwoo Group (倡優集團, professional performance group) allowed to take part in pungnyu as a sabeom (사범 師範, model to others; eminent teachers) and master players. One of the repertories that the musicians played were simbanggok, and the music was closely related to the pansori in its musical characteristics. It is conceivable that the exchange of the performance settings and genres of music led to the formulation of sanjo that is the instrumentation of pansori. The bangjung pansori became rapidly disseminated throughout the country.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산조 생성의 선행 견해에 대한 검증
Ⅲ. 창우집단(倡優集團)의 공연문화와 산조의 생성
Ⅳ. 산조의 문화변동과 발전
Ⅴ. 산조의 현대문화의 적응
Ⅵ. 맺는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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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형(Yi Bo Hyong). (2009).산조의 사회사적 의미 고찰. 국악원논문집, 19 , 18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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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형(Yi Bo Hyong). "산조의 사회사적 의미 고찰." 국악원논문집, 19.(2009): 18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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