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학술논문

정재무동 출신 장악원의 악공 관견

이용수 129

영문명
On the Boy Dancers of Court Banque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발행기관
국립국악원
저자명
송방송(Song Bang song)
간행물 정보
『국악원논문집』제19집, 165~187쪽, 전체 23쪽
주제분류
예술체육 > 음악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09.06.30
무료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정재무동(呈才舞童)은 정재여령(呈才女伶)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궁중잔치에서 공연된 정재 곧 궁중무용을 후대에 전승시키는 데 중요한 몫을 담당한 주역들이었으므로, 일찍부터 음악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정재무동이 성장해 어느 관아(官衙)에서 무슨 임무를 맡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음악학계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었다. 따라서 본고의 목적은 정재무동의 일부가 성장해 장악원(掌樂院)에 이속(移屬)되어 악공(樂工)으로 활약한 사례를 의궤(儀軌)에 의거해 검토함으로써 조선후기 궁중공연문화의 새로운 국면을 밝혀보고자 함에 있다. 순조(1800-1834) 때 정재무동 이흥문(李興文)과 함순길(咸順吉)은 성장해 장악원으로 이속되어 악공으로 활약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정재무동 출신으로 후에 성장해 장악원의 악공이 된 이흥문은 편종차비(編鍾差備)·편경차비(編磬差備)·방향차비(方響差備)로 궁중잔치에서 편종·편경·방향을 연주하였고, 악공 함순길은 피리차비(觱篥差備)와 장구차비(杖鼓差備)로 활동했음을 알았다. 고종(1863-1907) 때 정재무동 이경룡(李景龍)과 이수만(李壽萬)은 후에 성장해 장악원의 악공으로 활약한 또 다른 사례의 인물들이다. 정재무동에서 성장해 장악원의 악공이 된 이경룡은 대한제국(1897-1910) 시절 궁중잔치 때마다 현금차비(玄琴差備)로 거문고를 연주하였고, 이수만은 해금차비(奚琴差備)로 활약했음이 밝혀졌다. 조선후기 장악원의 악공들이 정재의 무구(舞具)를 옮기는 임무를 맡아 수행했는데, 이것은 조선전기 성종(1469-1494) 때 악사(樂師)나 악공이 맡았던 임무를 전승한 결과였다. 순조 때 대금차비(大笒差備) 김원식(金元植)과 박경완(朴景完)은 무고(舞鼓)의 북을 공연장으로 옮기는 봉고(奉鼓) 또는 포구락(抛毬樂)의 포구문(抛毬門)을 옮기는 봉구문(奉毬門)의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선전관청(宣傳官廳)의 고취수(鼓吹手)였던 자바라수(啫啫囉囉手) 임수만(林壽萬)은 김원식이나 박경완처럼 봉고나 봉구문 또는 죽간자를 든 봉죽간자(奉竹竿子)나 반(盤)을 공연장으로 옮기는 봉반(奉盤)의 임무를 맡았다고 보았다. 19세기 정재무동 출신의 장악원 악공들을 통해서, 그리고 정재 무구를 옮기는 임무를 수행한 장악원의 악공이나 선전관청의 내취수를 통해서 우리는 조선말기 궁중 공연문화의 새로운 국면, 즉 현행 정재의 직접적인 뿌리에 해당하는 무동의 전통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문 초록

Like court female dancers (jeongjae yeoryeong 呈才女伶), boy dancers (mudong, 舞童) of court banquets played an important role for transmission of court dances in the Joseon (朝鮮) period. This study aims at investigating intensively the four boy dancers (Yi Heung-mun 李興文, Ham Sun-gil 咸順吉, Yi Kyeong-ryong 李景龍, and Yi Su-man 李壽萬) appeared in such literary sources as Jinjak uigwe 『進爵儀軌』(1828), Jinch an uigwe 『進饌儀軌』(1829), and Chinyeon uigwe 『進宴儀軌』(1901 and 1902). In conclusion, the author points out the fact that Yi Hung-mun and Ham Sun-gil was originally boy dancers in the reign of King Sunjo (1800-1834), and Yi Kyeong-ryong and Yi Su-man in the reign of King Kojong (1863-1907), but later they became court musicians at the Royal Music Institute (Jangagwon, 掌樂院). In other words, court musician Yi Heung-mun played such instruments as pyeonjong (編鍾, bell-chimes), pyeongyeong (編磬, stone-chimes), and banghyang (方響, iron slabs), whereas court musicians Ham Sun-gil was piri (觱篥, cylindrical oboe) and changgu (杖鼓, hourglass drum) player. Court musician Yi Kyeong-ryong was a hyeon-geum (玄琴, six-stringed zither) player, while Yi Su-man, a haegeum (奚琴, two-stringed fiddle) player at court banquets. This facts show us a new aspect of boy dancers tradition in the Joseon period.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조선후기 각종 의궤 속 정재무동 관련 기록 개관
Ⅲ. 순조 때 정재무동 출신의 악공 점검
Ⅳ. 고종 때 정재무동 출신의 악공 검토
Ⅴ. 맺는말 : 조선후기 정재무동의 새로운 이해
<참고문헌>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참고문헌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인용하기
APA

송방송(Song Bang song). (2009).정재무동 출신 장악원의 악공 관견. 국악원논문집, 19 , 165-187

MLA

송방송(Song Bang song). "정재무동 출신 장악원의 악공 관견." 국악원논문집, 19.(2009): 165-187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