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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16~18세기 단종복위운동 관련 六宗英의 신원 과정

이용수 956

영문명
The amnesty of Yukjongyoung(六宗英) related with restoration of Danjong(端宗) in between 16 century and 18 century
발행기관
백산학회
저자명
이근호(Lee, Geun-Ho)
간행물 정보
『백산학보』第99號, 79~108쪽, 전체 29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4.08.30
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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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이 글은 癸酉靖難 또는 단종 복위운동과 관련해서 화를 당한 六宗英의 신원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육종영의 신원 과정은 이들이 화를 당한 근원인 端宗의 복권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단종 복위 이전 육종영의 신원과 관련된 논의는 成宗 연간에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성종 연간에는 주로 和義君이나 漢南君 측의 인물들에 의해서 解配나 토지 환수 등이 논의되었다. 성종은 육종영의 신원 문제를 한명회나 정창손 등 공신 세력의 견제 차원에서 활용하였다. 이후 中宗 연간에는 錦城大君 자손의 석방을 비롯해 화의군의 복관, 후손들의 璿源錄 등재 등이 이루어졌다. 이는 한때 정치를 주도했던 士林 세력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의 실현 차원에서 추진한 결과였다. 육종영의 신원은 이후 肅宗 때 단종이 추복되면서 본격화되어 순차적으로 永豊君이나 금성대군, 安平大君 등의 복관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英祖 연간에는 안평대군을 비롯해 금성대군, 화의군, 한남군, 영풍군 등에게 諡號가 내려졌다. 정조 연간에는 이를 이어 각종 추념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그 사업의 백미는 역시 莊陵의 配食壇에 배향된 사실이라 하겠다. 이를 통해 육종영은 국가적 추숭 대상자로 여겨졌다. 한편 이 같은 숙종대 이후 관련자들의 신원이나 추숭 과정은 결국 새롭게 임금과 신하의 의리를 확립하려는 국왕의 정치적 의도와도 관련된다.

영문 초록

This paper tracks the amnesty of Yukjongyoung(6 royal clansmans) that was suffered misfortune, because of Gyeyujeongnan(癸酉靖難) or Danjong rehabilitation movement. The Amnesty of Yukjongyoung had no choice but to closely related with the restoration of Danjong, which is the fundamental reason for their misfortune. Before Danjong was restored, discussion about them had begun to be suggested at Seong-jong(成宗). At that time, Release and land redemption were usually being discussed by the people belonged to Hwauigun(和義君) and Hannamgun(漢南君). After then, including the release for descendant of Geumseongdaegun(錦城大君), Restoration of Hwauigun and Seonwonnok(璿源錄) registration of descendant were accomplished. It was the result that Salim(士林), who once lead the politics, realized the political ideal that they pursued. The amnesty of Yukjongyoung had been begun in earnest at Sukjong(肅宗), when Danjong was restored, and then Yeongpunggun(永豊君), Geumseongdaegun and Anpyeongdaegun(安平大君) was successively restored. At Youngjo(英祖), Siho(諡號) was went to Geumseongdaegun, Hwauigun, Hannamgunp, Youngpunggun including Anpyeongdaegun. Then, at Jungjo(正祖), followed by this, several honor event for them had been done. Of course, the heart of it was oriented to the Baesikdan(配食壇) of Jangneung(莊陵). Through this fact, Yukjongyoung was recognized as the honored people at nation. By the way, the amnesty or honor process like this, after Sukjong, were also related with the king's political intent that tried to establish fidelity between king and vassal.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단종 복위 이전 璿派 복원과 자손의 서용 논란
Ⅲ. 단종 복위 이후 賜諡 및 追念 사업
Ⅳ. 맺음말
參考文獻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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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Lee, Geun-Ho). (2014).16~18세기 단종복위운동 관련 六宗英의 신원 과정. 백산학보, (99), 79-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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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Lee, Geun-Ho). "16~18세기 단종복위운동 관련 六宗英의 신원 과정." 백산학보, .99(2014): 79-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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