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7세기 후반 북방민족의 反唐활동과 발해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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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
- 7世紀後半北方民族的反唐活動和渤海建國
- 발행기관
- 백산학회
- 저자명
- 권은주(權恩姝)
- 간행물 정보
- 『백산학보』第86號, 151~190쪽, 전체 40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역사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1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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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영문 초록
高句麗滅亡後, 唐意圖控制遼河以東及韓半島地區, 這成為羅唐戰爭終結的起點, 此後進入轉折期. 677年, 安東都護府移往新城, 自此, 唐對高句麗舊地的控制就僅限於遼東地區. 並且隨著吐蕃和東突厥的成長和復興運動, 國際情勢惡化, 唐對東北邊境的政策逐漸消極, 偏向於維持現狀. 在這種情況下, 679年頃有高藏(寶藏王)的反唐圖謀, 暴露這事後, 唐選擇了將高句麗遺民再次遷徙這種消極性的對策. 以後遼東地區又受到高句麗遺民回遷和再遷徙等大打擊, 因而在相當一段時期內, 再出現大規模的反唐活動和高句麗復興運動的可能性微乎其微. 而唐到690年代初期, 內部要肅清反武后勢力, 鎮壓其叛亂, 外部為應對東突厥和吐蕃而動員了數十萬大軍, 因此不得不擱置對遼東地區的經營.
但是, 進入七世紀九十年代, 東突厥的復興和反唐活動刺激了東北地區諸民族的復興運動. 693年前後, 首先爆發了黑水靺鞨和室韋的叛亂, 696爆發的以遼西地區的契丹為中心, 包括奚, 高句麗遺民, 靺鞨等多民族的一系列大規模反唐戰爭則擴大到遼東地區. 遼東地區反唐戰爭通過安東都護府(新城), 遼東城, 磨米城和天門嶺戰鬥聲勢大振. 從當時遼東地區居民的種族構成和地域根源看, 運動的主導者極有可能是高句麗遺民和靺鞨人. 特別是大祚榮和乞四比羽集團起了中心作用. 因此, 在反唐戰爭後期, 唐通過對乞乞仲象和乞四比羽封爵來意圖懷柔.
經過天門嶺戰鬥, 大祚榮集團最終離開了飽受戰火的遼東, 東走東牟山, 建立振國(震國). 但是, 與大祚榮的成功建國相關, 應該對安東都護府的動向予以重視. 677年以後, 在新城的安東都護府成為唐在遼東地區的代理統治機構. 戰爭結束後, 698年降格為都督府, 移屬幽州. 此後, 安東都護府下轄的羈靡州並無城池, 高麗降戶分散在各軍鎮, 僅在名義上保留郡縣. 至此, 安東都護府事實上有名無實, 隨著從遼東地區的撤出, 唐在遼東地區可以作為橋頭堡的地方事實上已經一處也沒有, 渤海建國的絆脚石已被清除.
在這些條件下, 7世紀後半期持續不斷的北方民族反唐運動和696年反唐戰爭的餘波更加刺激了東滿州地區諸勢力的集結. 在天門嶺戰鬥中得勝東來的大祚榮的登場為這種集結推波助瀾, 並迅速抓住了這一建國時機.
목차
Ⅰ. 머리말
Ⅱ. 7세기 후반 북방민족의 興起와 反唐활동
Ⅲ. 696년 李盡忠 亂과 요동지역의 反唐전쟁
Ⅳ. 요동지역 唐 세력의 退潮와 발해건국
Ⅴ. 맺음말
【中文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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