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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北魏後期친위부대의 정치개입과 그 배경

이용수 249

영문명
발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최진열(崔珍烈)
간행물 정보
『역사문화연구』제30집, 279~309쪽, 전체 31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08.06.30
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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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고에서는 北魏後期 皇帝를 호위하는 친위부대인 領軍府의 구조와 領軍府 將領들의 정치개입 방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北魏後期 領軍府는 左衛府와 右衛府로 구성되었으며, “領軍將軍-左衛將軍·右衛將軍-武衛將軍-羽林.虎賁.‘直衛’”의 지휘계통을 지녔다. 그리고 宣武帝 永平년간에는 洛陽주위의 外軍인 四中府를 관할하면서 조직과 권력이 비대화하였다. 領軍府 高位將領(領軍將軍·左衛將軍·右衛將軍·武衛將軍)의 인적구성을 분석하면, 北魏宗室인 元氏와 長孫氏·奚氏 등 帝室十姓, 于氏·宇文氏·穆氏 등 鮮卑系와 乞伏氏·尒朱氏·賀拔氏 등 非鮮卑系를 포함한 ‘胡族’은 약 75%의 領軍府 高位將領을 배출하였다. 이는 北魏後期에도 胡族들이 領軍府를 장악하고 侍中 등을 겸임하여 여전히 漢族보다 정치적으로 우위에 있었음을 뜻한다. 皇帝를 至近에서 호위하며 번갈아 宿衛하는 ‘直衛(直閤將軍·直寢·直後·直齋)’는 胡族이 54%, 漢人은 41%를 차지하여 외형상 대등해 보인다. 그리고 元氏 등 소수 가문을 제외하면 대부분 1人이나 2人의 ‘直衛’역임자를 배출하였다. 이는 ‘直衛’임용자가 특정 家系에 편중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尒朱榮 가문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각지의 部落首領이나 漢人胡族의 子弟를 인질로 삼는 정책과 관련있음을 뜻한다. 이는 몽골의 ‘케식’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즉 北魏는 이들을 통해 각 部落首領이나 지방의 유력한 漢人豪族을 견제하며 정권을 안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北魏皇室 이하 ‘凡胡族勢力’은 領軍府 高位將領과 ‘直衛’, 羽林·虎賁 등 皇帝의 측근으로 활약하며 정치적 세력을 여전히 유지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정치적 세력은 領軍府 將領이 侍中·散騎常侍 등 門下省과 集書省의 侍從官의 겸임을 통해 유지 혹은 확대되었다. 이는 領軍將軍과 侍中을 겸해 實權者로 부상했던 于忠과 元叉의 예에서도 확인된다. 그런데 北魏後期 領軍府將領의 侍從官 혹은 侍奉官(嘗食典御 등) 兼任뿐만 아니라 侍從官과 侍奉官의 겸임 현상도 빈발하였다. 필자는 領軍府 將領과 侍從官, 侍奉官의 겸임 현상을 北魏前期 近侍官 운영방식의 연장선에서 파악하였다. 즉 侍衛와 侍從·侍奉이 결합된 원시적인 鮮卑系 近侍官이 孝文帝의 官制改革으로 중국식 官制로 대체되고 그 기능이 領軍府와 門下省(侍中 등) 및 산하의 6局(侍奉機構), 集書省(散騎常侍 등)으로 분화되었지만, 실제로는 서로 관직을 겸하면서 侍衛武官이 政策·인사·재판에 관여하는 등 前期의 近侍官처럼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따라서 北魏後期 領軍府와 門下省·集書省은 외형상 魏晉南朝의 官制를 수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北魏前期 近侍官 운영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官制 특히 領軍府의 운영방식에 한정하여 말하면, 孝文帝의 官制改革이 魏晉南朝의 官制를 모방한 것이지만, 領軍府의 구조나 실제 운영방식을 보면 北魏前期 近侍官 조직의 관성과 행태가 여전히 발견된다. 즉 겉모습은 중국제도를 받아들여 ‘漢化’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北魏前期 유목민들의 친위부대가 여전히 유지되었다.

영문 초록

作为孝文帝‘漢化改革’的一環,废止了胡族近侍官制,采用了領軍將軍等南朝的親衛部隊組織。但是考察北魏後期的政治可以发现領軍將軍的政治比重过于肥大。本文的写作目的就是找出其原因。北魏後期的領軍府分为左衛府和右衛府,指揮系統为“領軍將軍-左衛將軍、右衛將軍-武衛將軍-羽林、虎賁、‘直衛’(直閤將軍·直寢·直後·直齋)”。随着宣武帝永平年間管辖洛陽周圍的外軍四中府开始組織和權力肥大化。本文是把領軍府的人员组成分为領軍府高位將領和‘直衛’来考察的。考察領軍將軍、左衛將軍、右衛將軍、武衛將軍等所谓的領軍府高位將領的人员组成就可发现,北魏宗室元氏和長孫氏、奚氏等帝室十姓、各種‘胡族’占了75%左右。这表明北魏通过任命可信任的宗室、姻戚、親信的胡族为領軍府的高位將領来保持政权的稳定。而且他们兼任了侍中等可参与政治的官職,因此可以说,北魏後期北魏皇室或胡族的势力仍然强大。在至近護衛皇帝、轮番宿衛的‘直衛’中,北魏皇室元氏占全體87人中的15人。但是比‘胡族’占54%的領軍府高位將領的出身分布减少了20%左右,漢人占了41%,在外形上看起来差不多。而且除元氏等小數家族,大部分家族都有1人或2人的‘直衛’歷任者。这表明‘直衛’任用者不偏重于特定的家族,从尒朱榮家族的例子可以看出,这和把各地的部落首領或漢人胡族的子弟为人質的政策有关。这和蒙古的‘怯薛’很相似。卽,北魏通过他们牵制了各部落首領或地方的有力漢人豪族、稳定了政权。可以说北魏皇室的‘凡胡族勢力’仍然是皇帝的亲信,作为領軍府高位將領、‘直衛’、羽林、虎賁等,维持着政治勢力。 而且他们的政治勢力是通过領軍府將領兼任侍中、散騎常侍等門下省和集書省的侍從官来维持或扩大的。这在兼任領軍將軍和侍中而成为實權者的于忠和元叉的例子中可以确认。但是北魏後期不仅是領軍府將領兼任侍從官或侍奉官(嘗食典御等),而且频繁地出现侍從官兼任侍奉官的现象。筆者在北魏前期近侍官運營方式的延長線上考察了領軍府將領和侍從官、侍奉官的兼任現象。卽,侍衛和侍從、侍奉結合的原始的鮮卑系近侍官,因孝文帝的官制改革变成中國式官制,其機能分成領軍府和門下省(侍中等),以及所属的6局(侍奉機構)、集書省(散騎常侍等),但是实际上互相兼任官職,侍衛武官参与政策、人事、裁判等,象前期的近侍官一样履行了複合的的機能。因此可以说,虽然北魏後期領軍府和門下省、集書省在外形上看起来是收容魏晉南朝官制的新的组织,但是实际上仍然维持着北魏前期近侍官的運營方式。这在担任皇帝侍衛的領軍府经常投入到南朝的战争或镇压叛亂軍的例子中也可以看到。

목차

Ⅰ. 서 론
Ⅱ. 領軍府의 조직과 인적구성
Ⅲ. 領軍府將領의 他官兼職의 의미
Ⅳ. 결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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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열(崔珍烈). (2008).北魏後期친위부대의 정치개입과 그 배경. 역사문화연구, 3 , 279-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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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열(崔珍烈). "北魏後期친위부대의 정치개입과 그 배경." 역사문화연구, 3.(2008): 279-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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