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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大田) 월평산성(月坪山城)의 축성(築城) 주체(主體)와 위상(位相)

이용수 112

영문명
Wolpyeongsanseong Fortress in Daejeon: Its Status and Who Built It
발행기관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저자명
이한상(Han Sang Lee)
간행물 정보
『백제연구』백제연구 제63집, 39~63쪽, 전체 25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6.02.25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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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이 글은 대전 월평산성 발굴조사의 성과를 현 시점에서 재검토해본 것이다. 월평산성이란 현재 대전시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월평동산성과 그에 인접해 조사된 월평동유적을 아울러 표현한 것이다. 월평동유적에서 검출된 방어시설로는 목책①과 ②, 석축성벽①과 ②가 있고 월평동산성은 지표 및 시굴조사결과 문지와 성벽, 고대지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글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여러 시기의 방어시설을 누가 축조하고 운용한 것인지, 각 시기별로 이 성의 위상은 어떠했는지 하는 점이다. 첫째, 월평산성에서 검출된 방어시설 가운데 이른 시기에 속하는 것은 목책①과 ②이다. 조사범위에 한정한다면, 목책①은 능선 서남쪽으로부터의 공격에, 목책②는 동쪽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것이다. 출토 유물로 보면 5세기 후반 이후로 편년할 수 있다. 목책①은 호에서 출토된 토기로 보아 설치 주체를 백제, 목책②는 구조나 입지 등으로 보아 고구려로 볼 수 있다. 고구려가 방어에 취약한 대전 월평동까지 선상으로 남진한 것은 백제의 수취원을 빼앗는 한편, 백제와 신라 사이의 연결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둘째, 월평산성에서 검출된 방어시설 가운데 석축성벽①과 ②는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석축성벽①은 석축 기초를 만들면서 나무기둥을 세웠다는 점에서 고구려적 요소를 지닌 것으로 보이지만, 사비기 유물이 출토되는 원형수혈과의 중복관계로 보아 6세기 중엽 이전으로 연대를 올려보기는 어렵다. 석축성벽②는 내외 2겹으로 쌓은 것이며 북쪽에서 석축성벽①과 교차하며 그 위를 지나간다. 월평동산성은 유물과 성벽의 구조로 보아 7세기를 전후하여 축조된 것이다. 백제가 월평산성에 석축의 방어시설을 축조한 시점은 신라와의 관계가 악화된 553년 이후이고 그 직전에는 대규모 저장시설을 갖춘 병참기지로 유지된 것 같다. 월평동산성은 규모면에서 보면 대전지역에서 작은 편이 아니며 축성에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구현되어 있다. 막새는 출토되지 않았지만 다량의 기와가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산성 본연의 기능에 더해 현의 치소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있다.

영문 초록

This paper reviews the results of the excavation surveys conducted on Wolpyeongsanseong Fortress in Daejeon, which includes Wolpyeongdongsanseong Fortress designated as a Daejeon monument and a nearby archaeological site in Wolpyeong-dong. The paper focuses on those who built and utilized the fortress and its rank throughout history. First of all, the wooden fence stakes ① and ② belonged to defense facilities that were built in an earlier period. The unearthed relics date back to the late 5th Century. The wooden fence stakes ② was a defense facility built and operated by Goguryeo (circa 37 BC- 668 AD). It is presumed that a defense system was set up during the Goguryeo Dynasty in Daejeon to regain the territories taken during the Baekje Dynasty (18 BC-660 AD) in the south and to interrupt the coalition against it between Baekje and the Silla Dynasties (57 BC- 935 AD). Parts of it, like stone walls ① and ②, were built and operated Baekje. It is presumed that Baekje built such a defense facility in or about 553, when itsrelationship with Silla worsened, and then the Wolpyeongdongsanseong Fortress was built. It is speculated that the facility was earlier used as a military logistics base. As for the size, and compared to other facilities in Daejeon, the fortress was a large facility and displays an advanced knowledge in construction. A large number of roof tiles found in the area cause researchers to speculate that it was also the site of a local administrative office, where locals in the areas along the Gapcheon Stream served as officials.

목차

Ⅰ. 머리말
Ⅱ. 목책의 설치와 운용
Ⅲ. 석축성벽의 축조와 운용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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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

이한상(Han Sang Lee). (2016).대전(大田) 월평산성(月坪山城)의 축성(築城) 주체(主體)와 위상(位相). 백제연구, 63 (1), 39-63

MLA

이한상(Han Sang Lee). "대전(大田) 월평산성(月坪山城)의 축성(築城) 주체(主體)와 위상(位相)." 백제연구, 63.1(2016): 3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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