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학술논문

18~19세기 隱餘結의 파악과 지방재정운영

이용수 247

영문명
Grasping of Eunyeogyul(隱餘結) in the 18~19th century and management of local finance
발행기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저자명
임성수(Im, Seongsoo)
간행물 정보
『동방학지』동방학지 제181집, 33~69쪽, 전체 37쪽
주제분류
인문학 > 기타인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7.12.30
7,240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조선왕조의 재정은 토지세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중앙과 지방관청은 각각 토지를 분급 받아 독자적인 재정을 운영하였다. 그런데 지방관청은 정부가 지원해준 재원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은밀하게 별도의 토지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것이 이른바 은결(隱結)․누결(漏結)이다. 정부도 지방관청의 자의적인 토지운용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세입에 큰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용인하였다. 그러나 정부재정이 악화됨에 따라 상황이 변하였다. 숙종대 말 정부는 세입을 늘리기 위해 대대적인 양전을 시행하였다. 경자양전의 결과 일시적으로 과세지가 늘어났지만, 이후 계속해서 時起結이 감소하면서 그 효과는 반감되었다. 정부는 면세혜택을 통해 개간을 독려하였지만, 기경전은 오히려 줄어만 갔다. 정부의 정책과 달리 지방관청에서 이미 진전에 과세하는 것이 문제였다. 또한 개간된 토지들이 대부분 은여결이되어 지방재정에 활용되고 있었다. 균역법이 시 행되면서 급대재원을 위해 다시 한 번 은여결을 색출하였다. 갑작스럽게 지방재정의 일부를 잃게 된 군현에서는 대책이 필요했다. 18세기 후반지방에서는 환곡․식리․호렴․결렴․잡역 등 다양한 재원확보 방안이 동원되고 있었지만, 농업국가에서 근본적인 대책은 결국 토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지방관청은 조금씩 은여결을 재생산하였다. 지방관청의 은여결 조성에는 陳田과 給災, 그중에서도 永災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은여결의 재생산은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되었기 때문에 단속하기도 쉽지 않았다. 또한 진전과 급재는 민본이념을 중시하는 儒家的 통치체제에서 백성들의 진휼과 재생산을 위해 결코 중단할 수 없는 시책이었기 때문에 불합리성을 알면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은여결의 문제는 지방재정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책이 나와야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도 지방재정을 고려할 여력이때문에 19세기말까지도 은여결은 ‘불법적이면서도 불가피한’ 토지운영방식으로 존속되었다.

영문 초록

Finance of Joseon Dynasty was organized by land tax. Central and local governments received land and managed independent finance. But, it was difficult to manage with only financial resources supported by government for local government, so they had managed land separately and secretly for a long time. It s rightly Eungyel(隱結)ㆍRugyeol(漏結). Government recognized illegal land management of local government, but accepted if there was not a big borden for tax income. However, as government finance was deteriorated, the situation was changed. Government of the 18th century conducted a great yangjeon so as to increase tax income. Because of gyungjayangjeon, government successfully grasped taxed land, but it was decreased repeatedly and continuously after yangjeon. As gyunyukbeop was conducted, eunyeogyul was exacted again for guendaejaewon. Gunhyun who suddenly lost a part of local finance needed counteractions. Various measures were taken by region, but fundamental countermeasure of agricultural country was to grasp land finally. Local government reproduced eunyeogyul. For their creation of eunyeogyul, Jinjeon(陳田) and Geupjae(給災) were actively utilized. Their reproduction of eunyeogyul had been accumulated for a long time, so it was not easy to control. In addition, Jinjeon and Guepjae couldn t be stopped at all for people s Jinhyul and reproduction under the Yuga(儒家的) ruling system focusing on people-oriented concept, so it was maintained continuously in spite of the irrationality. Eunyeogyul problem could be solved by innovative support for local finance. However, government couldn t consider local finance, so eunyeogyul was maintained as illegal and inevitable land management until the end of the 19th century.

목차

1. 머리말
2. 18세기 庚子量田과 과세지 변화
3. 均役法 시행기 급대재원 마련과 隱餘結 활용
4. 지방재정운영과 隱餘結의 재생산구조
5. 맺음말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참고문헌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인용하기
APA

임성수(Im, Seongsoo). (2017).18~19세기 隱餘結의 파악과 지방재정운영. 동방학지, 181 , 33-69

MLA

임성수(Im, Seongsoo). "18~19세기 隱餘結의 파악과 지방재정운영." 동방학지, 181.(2017): 33-69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