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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淸末 紀年法의 構想과 民國紀年의 採擇

이용수 18

영문명
발행기관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金澤璟
간행물 정보
『동국사학』제59권, 483~520쪽, 전체 38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5.12.31
7,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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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고는 20세기 전후 중국에서 다양하게 구상된 기년방법과 民國紀年 의 관계를 고찰하였다. 辛亥革命의 성공으로 이전 혁명파가 주창해 온 黃 帝紀年은 왕조체제에서 사용해 온 帝王紀年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황제기년은 中華民國의 기년으로 채택되지 못하였다. 중화민국 임 시정부는 民國을 기년으로 결정하였다. 즉, 청말 다양하게 구상되었던 기 년방법은 새로운 국가에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러한 단절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본고는 먼저 통시적인 방법으로 청대 후기 이래 기년방법의 변천을 추적해 보았다. 다음으로 단절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황제기년과 민국기년의 관계를 고찰하였다. 제왕기년에 대한 도전은 청말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청 대 후기 반청세력이 제왕기년을 부정한 것에서 출발하여 19세기 중반 이 후에는 서력기년이 사회저변에서 제왕기년을 차츰 잠식하고 있었다. 이러 한 사회적 변화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헌파와 혁명파가 근대국가를 지향하는 가운데 제왕기년을 대체할 기년방법의 모색이 가능했던 것이다. 공자기년과 황제기년은 청말 다양하게 구상된 기년방법과 더불어 제왕기 년의 시간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간질서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 황제기년이 중화민국의 기년으로 이어지지 못한 직접적인 원인은 혁명 파의 種族主義가 혁명 이후 전개된 현실 속에서 한계를 드러내었고 황제 기년 자체에 심각한 결점이 있었던 데에 있다. 혁명파가 주창해 온 種族革 命論은 五族의 화합을 표방할 수밖에 없었던 중화민국의 이념에 부합하지 못하였다. 漢族의 종족적 아이콘이었던 황제기년 역시 한계가 명확하였다. 동시에 황제기년은 그 기원을 고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혁명 이전 연대의 불일치로 인해 혁명파 진영내부에서 이미 혼란 이 있었고, 의견은 통일되지 못하였다. 결국 상술한 원인으로 인해 황제기 년은 중화민국의 체제에 부합하지 못하고 심각한 결점을 노출한 채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영문 초록

목차

Ⅰ. 머리말
Ⅱ. 帝王紀年에 대한 도전
Ⅲ. 孔子紀年과 黃帝紀年
Ⅳ. 民國紀年으로의 轉換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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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澤璟. (2015).淸末 紀年法의 構想과 民國紀年의 採擇. 동국사학, 59 , 483-520

MLA

金澤璟. "淸末 紀年法의 構想과 民國紀年의 採擇." 동국사학, 59.(2015): 48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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