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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후기 박문사(博文寺)의 건립, 활용과 해방 후 처리

이용수 122

영문명
발행기관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안종철
간행물 정보
『동국사학』제46권, 67~93쪽, 전체 27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09.01.01
6,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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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이 논문은 대표적인 국가추모시설로 대한제국시기에 건설된 장충단 지역에 건립된 박문사의 건립과 활용, 해방 후의 처리를 다룬다. 박문사는 일제가 ‘만주사변’전후로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여 1932년 가을에 건립한 조동종계 불교사찰이었다. 당시 총독부 정무총감이 이사장으로 있던 ‘재단법인 이등박문공기념회’가 사업을 주도했는데 이는 총독부가 사실상 이 사업을 판장했음을 보여준다. 기념회가 박문사 설립기금을 각 행정기관을 동해 조선인들에게 사실상 강제했음은 이를 잘 보여준다. 총독부는 불안한 정세에서 이토추모를 통해 조선 내 치안에 도움을 얻고자 했다 박문사 건립기념회에는 정무총감을 필두로 정부 각 국정들, 사업가들, 조선인 유지들이 참여했다. 박문사는 특히 중일전쟁(1937) 발발 이후 일본 전몰장병 위령제,불교계 인사들의 추도식, 특히 조선합병 공로자 위령제 동의 개최에 활용 되었다 해방 직후에 미군정은 종교시설에 대한 일반 국제법적인 원칙에 따라 일본 불교시설을 조선불교계에게 이관해야 한다고 해석해 두고 있었다. 이는 박문사에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문사는 공공시설 위에 건축되었으므로 조선인들은 상이한 접근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혼란이 있었다 그러므로 미군정이 지원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이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긴 토론 끝에 김법린이 발언한 바, 즉 공공시설에 설립된 박문사는 새로운 국가 출범에 즈음해서 다시 관유지로 귀속되어야 한다는 안이 채택 되었다. 김법린은 당시 호래이스 언더우드(Horace H. Underwood) 등과 함께 미군정이 임명한 일본사원처리문제 위원회의 위원이었다. 박문사의 활용과 처리는 일제 발기 건립된 일본제 불교사찰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영문 초록

목차

Ⅰ. 서론
Ⅱ. 식민지 후기 박문사의 건립과 활용
Ⅲ. 해방 직후 박문사 관련 논란과 처리
Ⅳ. 결론
[국문초록]
[Abstract]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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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철. (2009).식민지 후기 박문사(博文寺)의 건립, 활용과 해방 후 처리. 동국사학, 46 , 6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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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철. "식민지 후기 박문사(博文寺)의 건립, 활용과 해방 후 처리." 동국사학, 46.(2009): 6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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