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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景德王代 王子 金泰廉의 日本派遣 事情

이용수 4

영문명
발행기관
한국고대사탐구학회
저자명
콘도 코이치(Kondo, Koichi)(近藤浩一)
간행물 정보
『한국고대사탐구』제5집, 97~124쪽, 전체 28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0.08.30
6,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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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고에서는 경덕왕 11년(752)에 왕자 김태렴 등 700여명이 일본에 파견된 사정에 대하여 일본 국내 사정이나 발해와의 관계 등 외적 요인을 중시하는 기존 연구와는 달리 파견의 주체인 경덕왕을 비롯한 신라정부의 입장을 검토하였다. 우선 경덕왕은 성덕왕의 정치를 이상으로 함으로써 對唐(漢化)政策을 계승하여 그에 따른 관제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왕권강화를 꾀하고, 그에게 반대하는 불만 귀족세력을 억압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하여 대외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일본 등 주변 제국보다 우위에 위치한 자세를 명백하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752년에 경덕왕을 중심으로 하는 王黨派가 일본에 적극적으로 조공하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경덕왕대의 정치 상황에서 경덕왕 등 왕당파에 불만을 가진 진골귀족으로 구성된 反專制主義勢力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경덕왕 13년(754)의 황룡사종 주조는 반전제주의세력인 효정과 삼모부인의 시주로 완성되고 있어, 그들의 부의 축적 정도를 알려준다. 더구나 김순정과 그의 손자인 김옹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반전제주의세력은 친일외교의 자세를 계승하였고, 왕당파가 추진한 대당정책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대일외교를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752년의 김태렴 등 700여명의 일본 파견은 반전제주의세력의 요청으로 추진되었지만, 김사인을 비롯한 정부 중추부에 있던 인물들의 협력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김사인은 745년부터 757년까지 上大等으로 있으면서 왕당파에 속했지만, 반전제주의세력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 이른바 중도적 인물이다. 그와 같은 인물이 사절단을 일본에 보낼 수 있도록 경덕왕에게 일부러 건의하였음을 짐작해 볼 수도 있다. 어쨌든 반전제주의세력이 대일외교를 요청한 이유와 경덕왕이 이를 일단 승인한 목적이 주목된다. 앞서 말했듯이 반전제주의세력은 많은 경제적 기반을 갖고 있어 자신의 공방에서 제작한 수공업 제품들을 일본에서도 교역하고자 대일외교를 적극적으로 요망하였다고 볼 수 있다. 경덕왕 쪽에서는 대당정책을 통한 왕권강화를 기본 방침으로 하면서도, 독자적 기반을 가진 반전제주의세력을 왕권 밑으로 회유하기 위해 대일외교를 승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752년의 대일외교는 정부 내에서 여러 의견 차이를 보였는데도 그들이 결속하여 사절단을 보낼 수 있던 명목에는 당시 王京人이 신봉하고 있던 華嚴宗을 통한 불교 교류가 큰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영문 초록

本稿では、景徳王11年(752)に王子金泰廉など700人余りが日本に派遣された事情について、既往の研究のように日本側や渤海との関係など外的な要因よりは、派遣を決定した主体である景徳王をはじめとする新羅政府の立場から検討した。それにより、当時の新羅政府内では景徳王を筆頭とする王党派とそれに対抗する反専制主義勢力の対立があったが、752年の対日本外交は、特に反専制主義勢力の要請が深く関与した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以下、簡単に要約すれば、次のようである。まず、景徳王は、父である聖徳王の政治を理想としながら対唐(漢化)政策を継承し、それによる官制改革を断行することで王権強化を成し遂げて、彼に反対する不満貴族勢力を抑圧した。それに伴い、外交面においても、日本など周辺諸国より優位に立つ姿勢を明白にしたといえる。したがって、752年の時期に、景徳王を中心とする王党派が日本に積極的に朝貢したとは考えられないのである。また、景徳王代の政治状況を考える上で、それに不満を持った真骨貴族など反専制主義勢力の動向が注目される。例えば景徳王13年(754)に鋳造された皇龍寺鍾は、そのひとり孝貞と三毛夫人の施主で完成されており、彼らの富の蓄積程度を窺わせる。加えて、金順貞とその孫の金邕から明らかなように、反専制主義勢力は、親日本の外交姿勢を王党派の推進する対唐政策に対抗する手段として継承·利用していたと考えられる。このように、752年の金泰廉一行の日本派遣は反専制主義勢力の要請により推進されたが、政府中枢にいた人物の協力もあったと考えられる。745年から757年まで上大等にあった金思仁は、王党派に所属したが反専制主義勢力とも良い関係を維持したいわゆる中道的人物のようである。そのような人物が、使節団を日本に送れるよう景徳王に建議したことも推察してみることができる。とすれば、反専制主義勢力が対日本外交を要請した理由と景徳王がそれをひとまず承認した目的はどこにあったのであろうか。前述のように、反専制主義勢力は多くの経済的基盤を持っており、自身の工房で製作した手工業製品を日本にも交易しようと、対日外交を積極的に望んだと思われる。これに伴い、景徳王側では、対唐政策による王権強化を基本方針としながらも独自の基盤を持った彼らを王権の下に懐柔するために、対日本外交を承認するほかなかったと考えられる。最後に、752年の対日本外交には政府内で様々な意見の対立がみられたが、彼らが結束して使節団を送ることができた名目に、当時王京人たちが信奉した華厳宗を通じた仏教交流が作用したことを付け加えておく。

목차

Ⅰ. 머리말
Ⅱ. 景德王代 王權强化와 對唐政策
Ⅲ. 反專制主義勢力의 움직임과 對日本外交
Ⅳ. 景德王의 懐柔策과 金泰廉의 日本派遣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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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 코이치(Kondo, Koichi)(近藤浩一). (2010).景德王代 王子 金泰廉의 日本派遣 事情. 한국고대사탐구, (), 97-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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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 코이치(Kondo, Koichi)(近藤浩一). "景德王代 王子 金泰廉의 日本派遣 事情." 한국고대사탐구, (2010): 97-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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