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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일제강점기 한남권번과 권번시조

이용수 3

영문명
Hannam-Gwonbeon and Gwonbeon’s Sijo during the Imperial Japan’s Forced Occupation Period
발행기관
한국교방문화학회
저자명
강지혜(Ji Hye Kang)
간행물 정보
『 교방문화연구』4권 1호, 43~61쪽, 전체 19쪽
주제분류
복합학 > 학제간연구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4.03.30
5,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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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한남권번의 설립 과정 및 한남권번을 소개한 시조 작품을 살펴보고 그 내용과 의미를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일제강점기 기생의큰 특징은 관기의 신분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생 제도와 기생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기에 작품을 분석하기에 앞서 기생 제도의 변화과정을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남권번의 설립과정 및 한남권번을 소개한 시조 작품을 살펴 그 의미를 파악해 보고자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관기 제도 폐지 후, 기생단속령 실시되면서 기생들을 관리하는 기생조합이 설립되었다. 기생은 춤과 노래를 생업으로 삼는 직업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생의 다양한 활동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된것이다. 한남권번은 대다수가 남도 출신으로 이루어진 권번이었다. 규모는 다른 권번에 비해 작았지만 남도 소리를 특장으로 인기를 끌었고, 이점을 경쟁력으로 삼았다. 이러한 한남권번의 특징은 시조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월계화(月桂花)’와 ‘남방지강(南方之强)’은 노력과 정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남도 출신의 뛰어난 기예를갖춘 기생(권번)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한남권번의 꺾이지 않는 기세와 영원을소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남권번의 기생들은 시대적 변화 속에서 꾸준한 노력과 정성으로 기예를 익히고 공연을 통해 기예적 능력을 인정받고자 했다. 기생들에게 기예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전통성과 전문성을 갖춘 예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기생을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할것이 아닌 전통을 잇고 이를 후대에 전승한 예인으로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영문 초록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establishment process of Hannam-Gwonbeon during the imperial Japan’s forced occupation period and Sijo (formal poetry) works that introduced Hannam-Gwonbeon, and to analyze their content and meaning. The main characteristic of Gisaeng (female entertainers) during the imperial Japan’s forced occupation period is that they escaped from the status of government-gisaeng. As these changes had a significant impact on the Gisaeng system and Gisaeng activities, before analyzing their works, this study attempted to explore the change process of the Gisaeng system. Based on this, this study attempted to grasp the meaning of Hannam-Gwonbeon by examining Hannam-Gwonbeon’s establishment process and the Sijo’s works that introduced Hannam-Gwonbeon. During the imperial Japan’s forced occupation period, after the abolition of the government-gisaeng system, as the Gisaeng crackdown decree was implemented, the Gisaeng guild was established to manage these people of Gisaeng. Gisaeng was recognized as one of the occupations that make a living from dancing and singing. In a capitalist society, Gisaeng’s various activities became a means of making money. Hannam-Gwonbeon were a Gwonbeon, the majority of whom were from Namdo (southern Jeolla province). Although its size was smaller than other Gwonbeon guilds, their Namdo Sori gained popularity as a special talent, and they used that advantage as a competitive advantage. These characteristics of Hannam-Gwonbeon also appear in their Sijo works. ‘Wolgyehwa (laurel flowers; 月桂花)’ and ‘Nambangjigang (南方之强)’ would mean their effort and sincerity, and at the same time, they mean those Gisaeng (Gwonbeon) with outstanding skills from Namdo. Through this, it can be seen that Hannam-Gwonbeon’s unwavering momentum and hope for eternity. These Gisaeng of Hannam-Gwonbeon learned their skills with constant effort and sincerity amidst the changes of the times and sought to be recognized for their technical-artistic abilities through performances. For these Gisaeng, technical-artistic crafts were not simply a means to make money, but a means to prove their worth as artists with tradition and expertise. Therefore, Gisaeng during the imperial Japan’s forced occupation period should not be recognized only as a sexual object, but there is a need to re-identify as artists who continued the tradition and passed it on to future generations.

목차

1. 서론
2. 일제강점기 기생 제도의 변화
3. 한남권번과 권번시조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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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혜(Ji Hye Kang). (2024).일제강점기 한남권번과 권번시조. 교방문화연구, 4 (1), 4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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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혜(Ji Hye Kang). "일제강점기 한남권번과 권번시조." 교방문화연구, 4.1(2024): 4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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