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여말 선초 절의파(節義派)의 고민: 출사(出仕)와 은둔(隱遁)의 기로
이용수 127
- 영문명
- 발행기관
- 한국정치외교사학회
- 저자명
- 신복룡
- 간행물 정보
- 『한국정치외교사논총』제32집 제1호, 5~40쪽, 전체 36쪽
- 주제분류
- 사회과학 > 정치외교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1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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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1] 한국사학사에서 주체와 사대 또는 모화 사관의 논쟁의 중심에 있는 주자학의 전래는 그 선악이나 호오(好)를 떠나서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다. 중국사에서는 원명 교체기요, 한국사에서는 고려와 조선의 교체기의 지식인들은 내외의 이중적 고민 속에서 주자학의 전래를 수용하고 소화해야 했다.
[2] 남송 피난 정권의 정치적 격변 중에서 왕조의 중흥을 고민하며 공자(孔子)의 선진 유학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주자(朱子)의 성리학은 같은 시대적 아픔을 겪고 있던 여말 선초의 학자들에게 많은 암시를 주었다. 당시 고려를 풍미하고 있던 불교의 중압 속에서 고민하던 관료지식인들은 그로부터의 탈출을 한 방법으로 주자학에 경도하기 시작했다. [3]여말의 관료지식인들 앞에는 출사할 것인지 아니면 불사이군(不事二君)의절의를 지킬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가 놓여 있었다. 이곡(穀)-이색(穡)-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로 이어지는 절의파와 정도전(鄭道傳)-권근(權近)으로 이어지는 현실주의적 사대부 사이의 갈등은 조선왕조의 개창으로 그 승부가 끝남으로써 관학파들은 역성을 강조하며 훈구 세력의 맥을 형성하였고, 절의파는 사림(士林)의 맥을 이으면서 새 왕조에서도 그 갈등을 지속했다.
[4] 당시의 지식인들이 절의파이든 신흥사대부이든, 그들에게는 자신의 왕조에 대한 억압 구조였던 몽골(元)에 대한 인식과 새로이 부상하는 명(明)에 대한 인식에서 같은 길을 걸었다. 절의파가 거대한 원제국의 세계화를 목격한 반면에 관학파들은 신흥 명왕조에서 중화의 부활을 기대하면서 모화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모두 사대주의적이었다.
영문 초록
[1] Confucianism or the ideology of Chu-tzu (朱子學), once at the center of the controversy between national autonomy and Sino-centrism, are issues that arise again and again in Korean historiography regardless of whether
historians view it negatively or positively. In the transitional age from the Yuan Dynasty (元) to the Ming Dynasty (明) in China and from the Goryu Dynasty (高麗) to the Chosun Dynasty (朝鮮) in Korea, Korean bureaucratic
intellectuals agonized both internationally and domestically about whether to accept and to assimilate the ideology.
[2] Chut-ze, who attempted to interpret Confucianism as political doctrine for the reconstruction of the exiled Southern Sung (南宋) Dynasty in turmoil, gave many suggestions to Korean bureaucrats, who were in the same agony
under the Mongolian regime. At the same time, Korean intellectuals pursued Chu-tze’s ideology as a means to free themselves from the prevailing tenets of Buddhism.
[3] Korean intellectuals found themselves at the crossroads of deciding whether to enter into service in the new dynasty or seclude themselves as hermits in the country. Conflicts between seclusionists led by Lee gok, his
son Lee Saek, Chung Mong-joo and Gil Jae, and realistic reformists led by Chung Do-jun and Kwon Geun ended with the victory of the latter at the founding of the Chosun Dynasty in 1392. Following this, the followers of the
former group formed a school of seclusion (士林) and the latter formed a conservative bureaucracy (勳舊), each continuing to strive against the other.
[4] Whether seclusionist or newly emerging bureaucrat, both groups realized that there would be no freedom from the “great China.” The former group indulged in an illusion of a great Mongol, and the latter in Sinocentrism
through Ming China.
목차
Ⅰ. 서 론
Ⅱ. 주자학의 전래와 초기 인식
Ⅲ. 왕조의 향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논리
Ⅳ. 대륙에 대한 인식: 원명 교체기의 고뇌
Ⅴ. 결 론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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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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