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학술논문

고구려 守墓法의 제정 경위와 布告 방식 * - 신발견 集安高句麗碑의 분석

이용수 105

영문명
The Process of the Establishment of Koguryŏ Sumyo (守墓) Law and Its Promulgation Method: An analysis of the newly found Koguryŏ Stele of Jian
발행기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저자명
김창석(Kim, Chang-Seok)
간행물 정보
『동방학지』동방학지 제169집, 75~100쪽, 전체 26쪽
주제분류
인문학 > 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5.03.31
5,920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集安高句麗碑에 의하면 小獸林王 대에 반포된 律令에는 守墓制에 관한 규정이 없었다. 율령 반포 전에 행해진 왕릉 수묘는 국왕의 敎ㆍ令에 의해서 이뤄졌다. 高句麗에서 관행적으로 시행 되어 오던 수묘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수묘인을 徙民하여 왕릉을 수호하고 제사를 지내도록 제도화ㆍ성문화 되었다. 그 뒤 故國壤王 때 율령에 守墓法을 추보했다. 수묘제가 성립된 이후 꽤 시간이 지난 다음 부터 수묘인의 羸劣化 현상이 나타나자 조정은 廣開土王 전에 이미 1次 守墓碑를 세웠다고 생각된다. 이때의 수묘비는 기존의 왕릉 수묘인 전체를 하나의 비석에 새긴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러한 형식의 수묘비는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몇 몇 국왕의 무덤이 훼손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고국양왕은 “東西祠”를 수리하여 역대 왕에 대한 제사체계를 정비하고 수묘법을 제정하였다. 광개토왕은 수묘법을 法源으로 하여 구체적인 조치를 다시 교ㆍ령의 형식으로 내렸다. 이때 건립된 2次 守墓碑는 왕릉 별로 하나씩 세우고 해당 수묘인만 적도록 했다. 광개토왕은 이로써 왕릉 간 수묘인의 差錯을 막고 차출된 烟戶로 하여금 수묘역을 대대로 역임하도록 강제하고자 했다. 長壽王은 父王의 敎言을 이행하면서 보완하는 방식으로 수묘역의 차출을 개편했다. 장수왕이 일부 수묘인을 교체했으므로 기존의 수묘비는 의미가 없어졌다. 광개토왕의 수묘비는 따로 세우지 않고 별도의 文書 형식으로 이를 대신했다고 보이며, 이와 연동하여 守墓役의 징발ㆍ입역 방식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영문 초록

According to the Koguryŏ Stele of Jian, no regulations on the Sumyo (守墓: tomb-guarding and management) system appeared in Yul-ryŏng (律令: law codes) that was promulgated during the reign of King Sosurim. Sumyo of the royal tombs before the promulgation of the Yul-ryŏng were conducted by the King s Kyo (敎) and Ryŏng (令). Later, during the reign of King Kogukyang, the Sumyo Law was added. It is assumed that the first Sumyo monument was built before King Gwang gaeto, when Sumyo subjects were on the decline sometime after the establishment of Sumyo Law. The Sumyo monument at that time is believed to contain a list of all of the royal tomb guards inscribed on a single tombstone. King Kogukyang organized the memorial service system for the royal ancestors, and established Sumyo Law. The second Sumyo monuments were built for each royal tomb, and each monument had inscribed the names of Sumyo persons relevant only to the particular royal tomb. Thus, King Gwang gaeto was able to avoid the mixing of Sumyo persons, and he intended to impose Sumyo labor for generations on subjects assigned to the post. Given that King Jangsu replaced some of the Sumyo subjects, the original Sumyo monument lost its significance. It appears that a Sumyo monument for King Gwang gaeto was not built, but it was recorded in a document. Through this, changes in the requisition and recruitment of Sumyo labor can be anticipated.

목차

1. 머리말
2. 集安高句麗碑의 내용 구성과 서술 방식
3. 守墓法의 제정 경위
1) 敎令에 의한 守墓制의 성립
2) 律令의 제정과 守墓法 추보
4. 守墓法의 布告 방식과 守墓役의 差定
5. 맺음말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참고문헌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인용하기
APA

김창석(Kim, Chang-Seok). (2015).고구려 守墓法의 제정 경위와 布告 방식 * - 신발견 集安高句麗碑의 분석. 동방학지, 169 , 75-100

MLA

김창석(Kim, Chang-Seok). "고구려 守墓法의 제정 경위와 布告 방식 * - 신발견 集安高句麗碑의 분석." 동방학지, 169.(2015): 75-100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