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학술논문

“그러나 투린이다!’ 니체의 도시의 발견

이용수 20

영문명
“Aber Turin!” Nietzsches Entdeckung der Stadt
발행기관
한국니체학회
저자명
Jörg H. Gleiter
간행물 정보
『니체연구』제25호, 259~284쪽, 전체 26쪽
주제분류
인문학 > 철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4.04.30
5,920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니체는 그의 마지막, 정신적으로 가장 생산적인 해였던 1888년 4월 초 투린에왔다. 그는 1888년 4월 20일에 하인리히 쾨젤리츠(Heinrich Köselitz)에게 보낸편지에서 투린을 “탁월한 발견” 이라고 말하며, 같은 해 4월 14일 칼 푹스(CarlFuchs)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투린을 “내가 있을 수 있는” 첫 번째 장소라고 알리고 있다. 또한 그 해 말 12월 16일 쾨젤리츠에게 보낸 또 한 통의 편지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알리고 있다: “최근에 깊이 생각해봤는데, 사람들이 단 한번이라도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지 않는 풍경이든 혹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는 것을즐거워하든 하나의 장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전에 나는 불가능한 것이라여겼다.” 그가 20년 전에 이미 자신을 잘 소개했던 것처럼, 오버엥가딘 산간지방의 산책자는 현대 중심지의 그런 한가로운 철학적 산보자가 되어 있었다. 1869년 초 당시 니체는 당시 로데(Erwin Rohde)와 함께 파리에서의 길고 긴 체류를계획했었다. 로데에게 보낸 1869년 1월 16일자 편지에서 니체가 표현했던 것처럼, “한 쌍의 한가로운 철학적 산보자처럼” 그들은 “진지한 눈과 미소 짓는 입술로 파리의 강가를 걸어 다니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이 계획들은 니체가 바젤에서 초빙을 받는 바람에 좌절되었다. 화려한 거리들과 직각의 거리패턴, 거의 끝없이 이어지는 건물 아케이트들과 건물들의 고전주의 양식 면에서 파리와 많은유사성을 지닐 만큼 성장한 공업도시였던 투린은 그에게 탁월한 발견이었다. 니체 연구에서 지금까지 간과된 것은 니체가 1888년에 도시인으로 변했다는것이다. 니체가 지금까지 “실스마리아의 은자” (토마스 만)로서 플라톤처럼 자유로운 자연 속에서 자신의 철학적 착상들을 얻었다면, 투린에서는 전적으로 소크260 니체연구 제25집라테스의 견해를 공격했던 것 같다. 투린의 끝없이 이어지는 아케이트 속에서행해진 니체의 산책들은 『비극의 탄생』의 직접적인 반향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그는 어떻게 소크라테스의 “아테네에서의 비판적인 행보”(GT, KSA 1, Abs. 13,S.89)가, 즉 폴리스에서, 스토아 속에서, 거리에서, 시장에서의 행보가 그의 철학적 깨우침의 행위들을 위한 장소가 되었는지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높은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들이 서 있는 복도와 맑고 고상한 선으로 그어진 지평선을 올려다 보면서, 그 옆에 빛나는 대리석 속에 다시 비치는자신의 미화된 모습의 변화 속” (GT, Abs. 25, S.155)에서 스스로를 “고대 그리스의 실존” (GT, Abs. 25, S.155)으로 복귀시켰다. 투린에서는 그 중 첫 번째로 19세기 “특별예술(Sonderkunst)”로서 음악으로부터의 니체의 분리와 현대의 “중심예술(Leitkunst)”로서 건축으로의 방향 선회가 일어났다. 도시의 발견과 더불어 미학 생리학의 사상은 두 번째로 몸의 현상학적 전환으로 명명할 수 있는 그의 예술이론의 중심부로 들어온다. 동시에 『힘에의 의지』의 기획의 취소로 데카당스는 그의 철학의 새로운 중심 개념이 되었는데, 이러한 철학으로 니체는 세 번째 최종적으로 바그너적으로 각인된 독일관념주의로부터의 분리되었고 프랑스적 현대성으로 방향전환을 했다. 니체의도시의 발견에 대한 이해 없이 그의 마지막 해의 저작들의 많은 것들이 아직도어둠 속에 머물러 있다.

영문 초록

Anfang April 1888, seinem letzten, geistig überaus produktiven Jahr, kamFriedrich Nietzsche nach Turin und berichtete, dass Turin eine “capitaleEntdeckung” (Brief an Heinrich Köselitz vom 20. April 1888) sei, Turin sei dererste Ort, “in dem ich möglich bin!” (Brief an Carl Fuchs vom 14. April 1888) AmEnde des Jahres verkündete er: “Neulich sagte ich mir: einen Ort zu haben, woman nicht heraus will, nicht einmal in die Landschaft, wo man sich freut, in denStraßen zu gehn! – früher hätte ich’s für unmöglich gehalten” (Brief an HeinrichKöselitz, 16. Dezember, 1888). Aus dem Spaziergänger der OberengadinerBergwelt wurde jener “philosophische Flaneur” der modernen Metropole, als dener sich selbst schon gut zwanzig Jahre zuvor vorgestellt hatte. Damals, Anfang1869, hatte er zusammen mit Erwin Rohde einen längeren Aufenthalt in Parisgeplant. Wie ein “paar philosophische Flaneurs” hatten sie “mit ernstem Auge undlächelnder Lippe, mitten durch den Pariser Strom hindurch schreiten” wollen(Brief an Erwin Rohde vom 16. Januar 1869). Nietzsches Berufung nach Basel ließdie Pläne scheitern. Umso mehr war Turin, eine aufsteigene Industriestadt, die mitihren Boulevards, dem rechtwinkligen Straßenraster, den fast endlosen Arkadenund dem Klassizismus der Gebäude viel Ähnlichkeit mit Paris aufweist, eine“capitale Entdeckung”. Von der Nietzscheforschung bisher übersehen wandelte sich Nietzsche imJahr 1888 zum Städter. Während Nietzsche bisher als “Einsiedler von Sils-Maria”(Thomas Mann) wie Platon in der freien Natur seine philosophischen Einfälleempfing, scheint es, dass er sich in Turin ganz auf die Seite von Sokrates schlug. Nietzsches Spaziergänge in Turin, die unter den fast endlosen Arkaden Turinsmachte, scheinen ein direktes Echo aus Die Geburt der Tragödie, wo er beschreibt,wie für Sokrates die “kritischen Wanderung[en] durch Athen” (Die Geburt derTragödie, KSA 1, Abs. 13), durch die Polis, in der Stoa, in den Straßen und auf demMarktplatz zu Orten seiner philosophischen Erweckertätigkeit wurden. In DieGeburt der Tragödie hatte Nietzsche sich selbst in eine “althellenische Existenz”(GT, Abs. 25, S.155) zurückversetzt, “im Wandeln unter hohen ionischenSäulengängen, aufwärtsblickend zu einem Horizont, der durch reine und edleLinien abgeschnitten ist, neben sich Wiederspiegelungen seiner verklärten Gestaltin leuchtendem Marmor” (GT, Abs. 25, S.155). In Turin vollzog sich erstens Nietzsches Ablösung von der Musik als“Sonderkunst” des 19. Jahrhunderts und Hinwendung zur Architektur als“Leitkunst” der Moderne. Mit der Entdeckung der Stadt trat die Idee derPhysiologie der Ästhetik ins Zentrum seiner Kunsttheorie, was zu dem führte, wasman zweitens Nietzsches leibphänomenologische Wende bezeichnen kann. Gleichzeitig wurde mit der Absage des Projektes des Willens zur Macht dieDécadence zum neuen Zentralbegriff seiner Philosophie, mit der Nietzschedrittens endgültig die Ablösung vom deutschen Idealismus wagnerscher Prägungund Hinwendung zur französischen Moderne vollzog. Ohne das Verständnis fürNietzsches Entdeckung der Stadt bleibe vieles in den Schriften des letzten Jahrsim Dunkeln.

목차

Bibliographie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참고문헌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인용하기
APA

Jörg H. Gleiter . (2014).“그러나 투린이다!’ 니체의 도시의 발견. 니체연구, (), 259-284

MLA

Jörg H. Gleiter . "“그러나 투린이다!’ 니체의 도시의 발견." 니체연구, (2014): 259-284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