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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국제관계 : 1920년대 동북아국제관계 재고찰

이용수 267

영문명
March First Movement and International Relations: Reconsidering Northeast Asian International Relations in 1920s
발행기관
혜암신학연구소
저자명
김용직(Yong-Jick Kim)
간행물 정보
『신학과교회』제11호, 79~111쪽, 전체 33쪽
주제분류
인문학 > 종교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9.07.30
6,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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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민족적 각성의 대반전을 이끌어냈고 이를 기반으로 한 임시정부를 조직하여 국제 사회에서 한국독립의 기치를 높이 세워나갔다. 이들은 대내적인 한민족 본토주 민들과 해외 이주교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배경으로 하여 해외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한국의 해외 민족지도자들은 1919년 상반기 파리강화회 담과 1921~22년 워싱턴 군축회담에 한국민족대표단을 파견하고, 한국 독립의 선전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합병 이후 일제의 만행과 3.1운동에서의 일제의 폭력적 진압 등의 사실을 국제무대에 고발하여 한국의 독립 선포와 반일 여론의 형성이라는 대의의 국제적 확산을 끊임없이 추구하였다. 비록 독립을 단기간에 성취할 수 없었지만 열강과 국제 사회에서 한국 민족은 독립을 쟁취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 였다.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큰 분수 령이 되었고, 한민족이 3.1 만세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하였다. 1919년 한국의 3.1운동은 전국적 독립 봉기와 시위운동을 일으 켰고, 한민족의 열렬한 독립의 요구와 열정은 국제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3.1운동 기간에 형성된 한국의 임시정부는 이후 한국의 혁명적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다만 러일전쟁 이후 아태 지역에 있어서 일본의 지속적 국력 상승과 1차 세계대전에서의 대독 전쟁 승리 등의 요인으로 인해 1920년대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은 열강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1919년 파리강화회담과 1921년 워싱턴회의에 한민족은 대표단을 각각 파견하고 독립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지만 바라던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였다. 그 대신 한민족 지도자들은 반식민 민족주의 혁명운 동의 대대적인 부흥과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1919년과 1920년대까지 구미 열강은 아직 제국주의적 관점과 식민 주의적 관행과 사고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였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이상주의의 기치를 내세우긴 하였지만 상원이 대변하는 고립주의적 전통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비록 구미 열강의 친일 대외 정책 기조의 변화는 더디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한민족의 독립 활동은 외면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더욱 이전 시기보다 활성화되고 있었다. 특히 3.1운동을 계기로 더욱 확산되고 심화되는 한국인의 민족주의적 각성은 일본에 대한 열강의 태도가 바뀌는 시점이 도래할 경우에 한국 독립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정신적 자원이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문 초록

In 1919 Korean nationalist leaders could galvanize national consciousness and led Korean people into great national awakening, which eventually succeeded in establishing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The Korean leaders could continue their nationalist struggles against Japanese oppressions on firm support of domestic population as well as of Koreans living abroad in China, Manchuria and United States. Korean nationalists sent special mission groups to Paris Peace Conference of 1919 and to Washington Arms Limitation Conference of 1921 and began their diplomatic activities toward western great powers. Although independence was not readily acquired, the Koreans impressed some of global opinion leaders as time goes by and further spread positive outlooks by onlookers on feasibility of Korean independence in future. World War I was a great watershed that fundamentally dissolved imperialistic world order and it also provided salient opportunity for Koreans to start their nationalist movements. During 1919 March First Movement Koreans launched a nationwide uprising and demonstration movements so fierce that foreign and Western media payed great attention to them. Many Korean exiled governments emerged during the active phase of Korean nationalist struggles in 1919 that ultimately integrated into a Shanghai based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in September 1919. Even if Korean nationalism was in vogue since the great success of 1919’s independence struggles, Koreans could not gain freedom on account of Japan’s latest success in their military successes in World War I against the Germany in Northern China. Neither could Koreans persuade any great power to assist Korean cause of independence in Washington Arms Limitation Conference of 1921. United States could not favorably respond to Korean revolutionary claim that attempted to topple Japanese rule in Korea and create schism among great powers in Pacific region. President Harding and his Secretary of State Hughes could not risk conservative traditional approach of American isolationism unlike former President Wilson. Notwithstanding these incidents of diplomatic frustration and failure in 1919 and 1920s, Koreans could envision a bright future considering immense effects of nationalist awakening since 1919

목차

Ⅰ. 서론
II. 제1차 세계대전의 성격과 국제적 변화
III.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동북아
IV. 워싱턴회의와 한국의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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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

김용직(Yong-Jick Kim). (2019).3.1운동과 국제관계 : 1920년대 동북아국제관계 재고찰. 신학과교회, (11), 79-111

MLA

김용직(Yong-Jick Kim). "3.1운동과 국제관계 : 1920년대 동북아국제관계 재고찰." 신학과교회, .11(2019): 7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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