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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Shinto, Nationalism and the Catholic Church in the Early Showa Era

이용수 101

영문명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저자명
미요시 치하루(Miyoshi Chiharu)(三好 千春)
간행물 정보
『신학과철학』신학과 철학 제18호, 11~43쪽, 전체 33쪽
주제분류
인문학 > 기타인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1.05.30
6,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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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이 논문은 극단적 국가주의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초기 쇼화시대에 일본 가톨릭교회의 교회 선교정책인 ‘T적응주의’Q를 재검토한다. 일본 가톨릭교회는 신사참배가 죄, 또는 신사예식이 미신행위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에, 신사를 방문하는 관행(‘T신사참배’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1932년의 ‘T상지대학교-야 수쿠니신사 사건’Q과 그 여파는 교회의 정책에 변화를 촉발하였다. 바티칸의 신앙교리 성성(Propaganda Fide)은 ‘luries instanterque’Q라는 교령을 발표하면서 신사 예식이 단지 시민사회와 관련된 가치만을 가진다는 이유로 가톨릭 신자들에게 신사참배를 허용할 뿐 아니라 격려하였다. 이 바티칸 교령과 더불어 일본정부도 신사참배는 애국적인 행위이지 결코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고 보증하였기에, 가톨릭교회는 신사참배를 적응주의의 한 행위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논문은 ‘T국가 신토’T가 천황의 유일무이한 종교적 권위위에 세워졌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그래서 교회의 애국적 감정의 표현들은 살아있는 신인 천황에 대한 복종의 행위로 불가피하게 귀결되었다. 그러기에 일본의 가톨릭교회는 일본 문화에의 적응의 방법을 찾으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극단적 국가주의의 요구에 적응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영문 초록

This article discusses the topic of ‘accommodation’ in the Church’s policy in mission as it was understood by the Japanese Catholic Church in the early Showa era when ultra nationalism was very influential. The Catholic Church in Japan had rejected participation in the practice of shrine visitation since worshipping at shrines was regarded as a sin, and shrine rites were considered superstition. However, the ‘Sophia University-Yasukuni Shrine Incident’ in 1932 and its aftermath precipitated a shift in the Church’s policy. The Vatican’s Propaganda Fide issued an instruction Pluries instanterque that not only allowed but also encouraged Catholics to attend the Shinto shrine rites, since ceremonies at shrines, it maintained, had only civil values. With the Vatican decree and also guarantees by the Japanese government stating that offering reverence at shrines had patriotic but in no way religious meaning, shrine visits were seen by the Catholic Church as no more than an act of accommodation. However, this article points out, the problem was that the ‘State Shinto’ was founded on the unique religious authority of the Tenno(Emperor). Expressions of patriotic sentiment by the Church became unavoidably acts of obedience to a living god, the Tenno. Thus, although the Catholic Church in Japan intended to seek ways of accommodating to the Japanese culture, what the Church actually did resulted in accommodation to the demands of Japan’s ultra nationalism.

목차

1. Introduction
2. How the Catholic Church dealt with Loyalty, Patriotism, and Shinto
3. Sophia University and the Yasukuni Shrine Incident
4. The Aftermath: Accommodation to Nationalism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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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요시 치하루(Miyoshi Chiharu)(三好 千春). (2011).Shinto, Nationalism and the Catholic Church in the Early Showa Era. 신학과철학, (1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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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요시 치하루(Miyoshi Chiharu)(三好 千春). "Shinto, Nationalism and the Catholic Church in the Early Showa Era." 신학과철학, .18(201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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