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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권태호, 독일 예술가곡의 파종자

이용수 129

영문명
발행기관
한국음악문헌학회
저자명
편집부
간행물 정보
『음악문헌학』제1권, 195~248쪽, 전체 54쪽
주제분류
예술체육 > 음악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0.01.01
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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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권태호(權泰浩, 1903-1972)는 대구지역에서 개화가 이후 서양음악분야에 씨앗을 뿌린 분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분이 바로 권태호이다. 그는 해방 후 대구에 정착하면서 대구음악계에 막중한 영향을 끼쳤으므로 대구음악사적으로 볼 때 논의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대구지역에서의 개척자적인 성악활동을 하였음이 확인되는데, 그것은 1928년 7월 14일 대구소학교대강당(구 중앙초등학교)에서의 독창회이다. 이 독창회는 대구지역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것이므로 대구지역 성악분야에 선구자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또한 국민가요합창단을 조직하여 음악보급에 심혈을 기울여 노래보급에 공헌하였다. 본고에서는 수많은 연주는 물론이거니와 작곡활동을 통해 음악계에 공헌하였음이 논의되었다. 권태호의 성장과정 및 음악습득 경위를 비롯한 생애와 음악활동 내용, 그리고 그의 인간적인 면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권태호는 성악활동ㆍ음악교육활동ㆍ작곡활동ㆍ국민가요의 가창활동 등으로 말미암아 한국성악사의 싹을 마련하였음은 물론이고, 특히 대구 지역에서 서양음악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 밝혀졌다. 비록 권태호가 남긴 음악적 흔적이 현재 모두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방 후 대구음악계 전반에 끼친 영향은 막중하다 하겠다. 생전에 수많은 연주와 작곡한 곡, 그리고 숱한 일화를 남겼다. 권태호는 우리나라에 독일가독의 씨앗을 뿌린 선구자적인 전문성악가이며, 각계각층에서 노래 부를 수 있도록 많은 곡을 작곡한 작곡가이고 또한 평양 숭실전문학교와 광성고보에서의 음악교육과 경주예술학교와 평양음악연구소ㆍ대구음악학원의 설립 추진 그리고 대구시민들에게 노래보급을 위해 국민계창운동을 벌린 음악교육가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를 성악ㆍ음악교육ㆍ작곡분야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전문음악가라 불러도 조금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권태호는 1972년 2월 29일 안동 예안에서 70세의 나이로 영면하면서 “인생이 허무하게 와서 허무하게 가는 것인데, 남은 것은 인정뿐이라” 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권태호의 출생지인 안동에서는 그의 뜻을 기리는 추모음악회를 가졌으나, 오히려 많은 음악적 영향을 끼친 대구지역에서는 권태호 단독의 행사를 개최한 바 없다. 더구나 권태호란 이름을 기억하는 젊은 음악가들이 많지 않음을 생각할 때, 앞으로 그에 대한 정당한 재평가

영문 초록

목차

1. 머리말: 한국음악계의 숨은 공로자
2. 권태호의 생애와 음악활동
3. 맺음말: 권태호에 대한 새로운 이해
〈부록〉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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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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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2010).권태호, 독일 예술가곡의 파종자. 음악문헌학, 1 , 19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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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권태호, 독일 예술가곡의 파종자." 음악문헌학, 1.(2010): 19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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