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조선 후기 서양금의 수용과 문학적 형상화 방식
이용수 28
- 영문명
- The Acceptance of Dulcimer and Its Literary Representati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 발행기관
- 한국고전연구학회
- 저자명
- 하지영(Ji-young Ha)
- 간행물 정보
- 『한국고전연구(韓國古典硏究)』제66권, 95~130쪽, 전체 36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문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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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본고에서는 유득공(柳得恭)의 「동현금부(銅絃琴賦)」와 남공철(南公轍)의 「청철금(聽鐵琴)」, 「금부(琴賦)」, 「악기부(樂器賦)」를 중심으로 서양금의 수용과 문학적 형상화 방식을 살펴보았다. 유득공과 남공철의 작품은 서양금이 가지는 함의를 심도 있게 풀어내면서, 서양의 기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진지한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유득공은 「동현금부」에서 서양금을 구성하는 구리라는 광물, 서양금의 제작 원리에 대해 세밀하게 탐구한 다음, 서양금이 여러 가지 전통 음악, 나아가 아악과 불합하지 않음을 서술하고, 마지막으로는 동성이기론을 덧붙여 기존의 유교 문화 체제 내에서 서양금으로 대표되는 외래 문물을 충분히 조화롭게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려 하였다. 유득공의 작품을 통해 북학파 사이에서의 서양금 향유가 취향의 영역 안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국의 문물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동반하는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남공철은 아취의 영역에서 서양금을 소비하다가, 반서학적인 분위기 그리고 악풍반정 정책에 호응하며 서양금을 아악과 공존할 수 없는 오랑캐의 악기라고 결론을 내렸다. 「청철금」, 「금부」, 「악기부」는 중화를 계승한 조선이 예악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그 나름의 논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 하겠다.
19세기 이후 양금은 국악화되었지만 애초에 유득공이 서양금을 통해 보여주었던 이문화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크게 확산되지 못했던 것은, 아악을 회복해야 한다는 당위와 서학에 대한 경계가 명분으로나마 강력하게 작용되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유득공과 남공철 작품은, 단순한 개인적 차를 넘어 외래문화에 직면한 조선 문인들의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예고해주는 것이기에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문 초록
This paper examines the reception and literary embodiment of the dulcimer, focusing on Yu Deuk-gong's “Donghyeongeumbu” (銅絃琴賦) and Nam Gong-cheol's “Cheongcheolgeum” (聽鐵琴), “Geumbu” (琴賦), “Akgibu” (樂器賦). The significance of Yu Deuk-gong and Nam Gong-cheol's works lies in their in-depth exploration of the implications of the dulcimer and the formation of a serious discourse on the understanding of Western artefacts.
“Donghyeongeumbu” demonstrates that the dulcimer can sufficiently harmonise with traditional music, based on the relativistic perspective of Dongseongigiron (同聲異器論). It is noteworthy that almost half of the main text is devoted to describing the process of mining and processing copper to make the dulcimer. This shows the author's interest not only in the enjoyment of the dulcimer as a refined taste, but also in the technology of creating new artefacts.
On the other hand, Nam Gong-cheol initially consumed the dulcimer in the realm of elegance, but concluded that it was a barbaric instrument that could not coexist with classical music, responding to the anti-Western atmosphere and the policy of correcting musical styles. “Cheongcheolgeum”, “Geumbu” and “Akgibu” are works that literally embody his logic that the nation, as the inheritor of Chinese civilisation, should revive traditional rituals and music.
After the nineteenth century, the dulcimer was nationalised, but enjoyed only as a musical instrument, and the serious reflection on intercultural understanding initially shown by Yu Deuk-gong did not spread further. This can be explained by the strong imperative to restore classical music. The variations in the portrayal of the dulcimer from Yu Deuk-gong to Nam Gong-cheol reflect the changing attitudes of Joseon scholars towards foreign cultures.
목차
1. 서론
2. 수용 직후 서양금의 향유 양상
3. 서양금에 대한 두 가지 시선과 문학적 형상화 방식
4. 결론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 한국고전연구(韓國古典硏究) 제66권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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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서양금의 수용과 문학적 형상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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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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