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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남양주 묘적산(妙寂山)의 역사와 문화공간적 의미

이용수 66

영문명
The history and cultural space meaning of Myojeok-Mountain(妙寂山) in Namyangju
발행기관
한국고전연구학회
저자명
김세호(Kim, Se-ho)
간행물 정보
『한국고전연구(韓國古典硏究)』제55권, 231~258쪽, 전체 28쪽
주제분류
인문학 > 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1.11.30
6,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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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조선이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하면서 경기(京畿) 일대는 도성 근교의 문화공간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로 인해 이곳에는 문화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공간이 산재해 있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일천한 상황이다. 이 글에서는 오늘날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묘적산(妙寂山)을 중심으로 그 역사와 공간적 특징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조선시대 묘적산은 행정구역상 양주(楊州)에 속한 곳으로 지리지 등에 그 이름이 등장한다. 조선 전기에는 도성 근교의 사냥터로 활용되며 역사에 이름을 올렸고, 조선 후기에는 사대부의 선영이 경영되며 풍수적인 가치로 주목을 받았다. 한편, 묘적산에는 왕실의 후원하에 묘적사(妙寂寺)가 들어섰고 묘적사는 조선 후기 문인들의 유람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장동김문(壯洞金門)은 묘적산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상헌(金尙憲)을 시작으로 김수흥(金壽興) 및 김수항(金壽恒)의 아들들은 선대의 자취를 이어받아 묘적산에 발을 들였다. 특히 김수항의 아들 김창협(金昌協)은 묘적산의 산수를 사랑하여 이곳에 별서를 건립하고자 했고, 묘적사는 평생의 마지막 유람처로 기억되었다. 장동김문에 의해 주목된 묘적산은 이후 도성 근교의 대표적인 명승(名勝)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중에서도 김창협과 결부된 공간적 의미는 그 변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후대 문인들은 김창협의 자취를 그리며 묘적산을 유람하고 그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이러한 유람은 19세기까지 이어졌으니, 이는 묘적산과 묘적사의 남다른 위상을 증언하고 있다.

영문 초록

When the Joseon dynasty established its capital in Hanyang(漢陽), the Gyeonggi(京畿) area was spotlighted as a cultural space near the capital. This gave rise to many cultural and historical places here, but research on them is still lacking. In this study, I studied the history and characteristics of the Myojeok-Mountain(妙寂山) located in Namyangju, Gyeonggi-do.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Myojeok-Mountain belonged to the administrative district of Yangju(楊州) a place that appears on various maps. During the early Joseon dynasty, it was used as a hunting ground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it was used as a family burial ground and received attention for its feng shui(風水) value. In the late Joseon dynasty, Jangdong Kimmun(壯洞金門) is believed to have transformed Myojeok-Mountain into a cultural space. Kim Sang-heon(金尙憲), Kim Su-heung(金壽興) and the sons of Kim Su-hang(金壽恒) emulated their predecessors and set foot on the Myojeok- Mountain. In particular, Kim Chang-hyeop(金昌協), the son of Kim Su-hang, appreciated the scenery of the Myojeok-Mountain and sought to build a Byeolseo(別墅) here, which was thought to be the last Byeolseo of his life. The Myojeok-Mountain, which was noted by Jangdong Kimmun, has since established itself as a representative monk near the capital. Among them, the spatial significance associated with Kim Chang-hyeop exerted a profound influence on the change. Later, writers visited Myojeok- Mountain and wrote poems about its beauty. These tours continued until the 19th century, and are proof of its unique cultural history.

목차

1. 서론
2. 묘적산과 묘적사의 역사
3. 장동김문의 묘적산 유람
4. 김창협 사후 묘적산의 기록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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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호(Kim, Se-ho). (2021).남양주 묘적산(妙寂山)의 역사와 문화공간적 의미. 한국고전연구(韓國古典硏究), 55 , 231-258

MLA

김세호(Kim, Se-ho). "남양주 묘적산(妙寂山)의 역사와 문화공간적 의미." 한국고전연구(韓國古典硏究), 55.(2021): 23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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