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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1895~1907년 평안도 지역의 軍土 조사 작업과 관련 분쟁

이용수 24

영문명
발행기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저자명
김종준
간행물 정보
『동방학지』동방학지 제148집, 241~295쪽, 전체 55쪽
주제분류
인문학 > 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09.12.31
9,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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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갑오개혁 이후 역토, 둔토 등의 각종 국유지는 승총 후 여러 정부 기관의 관할이 되었다가 대한제국기 들어 내장원의 재원으로 정리되어 갔다. 그러한 국유지 조사 과정에서 평안도 지역의 ‘軍土’는 다른 둔토 등과 일정하게 구분되고 있었다. 그 이유로는 첫째, 기원적으로 조선 후기 ‘軍役土’가 군역에 대한 대응으로 마을 공동 소유의 형태를 띠고 설정되기 시작했다는 점, 둘째, ‘군토’가 갖고 있는 명목의 특성상, 군부, 지방대, 원수부 등 군사 관련 기관 등이 적극적으로 관할권을 행사하려 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군토’ 조사 과정에서 관할권을 둘러싸고 정부 기관 간의 마찰이 심했고, 민인들도 ‘사토’와 ‘공유지’의 성격을 각각 강조하면서 국유화를 막으려고 했다. 현재 규장각에는 이 시기 평안도 등 북부 지역의 ‘군토’ 규모와 관련 분쟁의 양상 등을 보여주는 자료가 다수 남아 있다. 본 연구는 이를 통해 크게 두 가지 작업을 시도하였다. 첫째, 군토의 용례와 ‘조사안’을 통해 그 실체에 접근해본 것이다. 용례를 통해 기원에 대한 상이한 이해 방식이 분쟁의 소지를 낳게 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평안도 등지의 특유의 소작관습으로 군토 경영의 일단을 추정해보았다. 또한 각종 ‘조사안’을 통해 관할 기관들이 무엇을 파악하고자 했는지, 실제 군별 ‘군토’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도전 책정 비율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장원은 은루토의 발견과 도전 책정 비율의 증가를 통해 도전 액수를 늘리고자 했으나 그 비율의 변화가 일괄적인 것은 아니었다. 둘째, ‘군토’ 관련 각종 분쟁 발생의 배경과 양상을 살펴보았다. 정부 기관 간의 마찰의 경우 대개 내장원이 한 축이 되어 군부, 홍릉, 선희궁, 원수부 등의 여타 기관들과 맞서고 있었다. 특히 의주군에서 ‘조사안’ 28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또한 기관 간 마찰로 인해 조사가 반복되면서 민인들의 불만도 커져가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민인들은 ‘군토’의 기원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관습을 존중’하고, ‘사유권을 보호’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분쟁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으며 1905년 이후로는 친일 세력과 결탁하기도 하였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이 시기 ‘국유지 조사와 경영’의 일면이 규명될 수 있을 것이며, 특히 그 과정에서 민인들이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그 실상과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영문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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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

김종준. (2009).1895~1907년 평안도 지역의 軍土 조사 작업과 관련 분쟁. 동방학지, 148 , 241-295

MLA

김종준. "1895~1907년 평안도 지역의 軍土 조사 작업과 관련 분쟁." 동방학지, 148.(2009): 241-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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